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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타임 리뷰] 드레스덴 성 십자가 합창단의 바흐 '마태 수난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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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들어도 대충 분위기가 어떻게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짐작이 갔다.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연주할 목적으로 작곡되어 현악 합주에 오르간, 목관악기가 가세하는 단출한 편성의 오케스트라 반주였지만 '음악의 화가'바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의 장면 장면을 충실히 그려냈다. 몰아치는 첼로와 더블 베이스의 빠른 연주에서 천둥 번개가 치고 지진이 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3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드레스덴 성 십자가 합창단과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마태 수난곡'은 6시까지 장장 3시간 30분(중간 휴식 포함)동안 5명의 독창자와 합창단이 빚어낸 대하 드라마였다. 무대 세트와 의상은 없었지만 한편의 오페라나 다름없었다. 성 십자가 교회 합창단 칸토르 로데리히 크라일레(51)는 합창 지휘자 출신인데도 바흐의 관현악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하나도 남김없이 보여줬다.

이날 연주에서 에방겔리스트(복음서 저자)로 출연한 테너 마르틴 페츨트는 2004년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와 게반트하우스 내한 공연 때도 같은 역을 맡았었다. 예수가 숨을 거두는 대목을 부른 다음 그는 감동에 북받친 나머지 악보를 가슴에 묻은 채 두 눈을 감고 깊은 묵상 기도를 올렸다. 피날레 합창'우리들은 눈물에 젖어 무릎을 꿇고'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합창 선율을 조용히 따라 불렀다. 아리아와 합창 사이에서 감초 역할을 하면서 다채로운 목소리와 연기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단순한 내레이터의 역할을 넘어 등장 인물과 관객 사이를 연결해 주면서 음악을 이끌어갔다.

'마태 수난곡'에는 오페라 아리아를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자주 등장한다. 아리아의 반주로 나오긴 하지만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플루트 협주곡 같은 부분도 있다. 십자가의 비극 앞에서도 달콤한 선율이 흐른다. 성(聖)과 속(俗)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마태 수난곡'이 초연됐던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은 '원조'라는 자부심과 함께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면, 드레스덴 성 십자가 합창단은 그런 부담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것 같다. 명쾌한 대조와 변화무쌍한 다이내믹이 주는 극적인 생동감을 애써 무시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인 것 같다. 레코딩 스튜디오에서는 몰라도 대형 콘서트홀에서 드라마틱한 효과는 필수적이다.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과 드레스덴 성 십자가 합창단은 모두 남성들로만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에는 40, 50대의 성인 남자들도 있는 데 반해 성 십자가 합창단은 만 20세가 되면'은퇴'를 해야 한다. 그만큼 젊고 풋풋한 소리를 낸다.

실제로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과 성 십자가 합창단은 친선 축구시합으로 친목을 다지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이 다소 아카데믹한 연주를 들려준다면 성 십자가 합창단은 심금을 울리는 웅장한 울림으로 낭만적.비극적 정서를 잘 표현해낸다. 객석 여기 저기엔 연주가 모두 끝났는데도 자리를 뜰 줄 모르고 눈시울이 흥건히 젖어 있는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무대 정면의 자막 덕분에 음악적 감동이 두 배로 다가온 데다 청소년들이 빚어낸 영혼의 울림이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3월 2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올린 성 십자가 합창단과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3월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바흐의 칸타타 '내 마음에는 근심이 많도다'를 들려줬다. 성 십자가 합창단 단원 출신으로 최근 지휘자로도 활약 중인 테너 페터 슈라이어가 지휘할 예정이었지만 로데리히 크라일레가 3일 연속 지휘대에 서서 전성기에 달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마음껏 펼쳐 보였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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