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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인간애…시대를 뛰어넘는 감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52년만에 복권, 공연중인 월북작가 함세덕의 『동승』이 시대를 뛰어넘는 탁월한 작품성으로 가을 연극계의 최고 화제작이란 찬사를 모으고 있다.
『동승』은 39년 발표된 함씨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으로 극단「연우무대」가 공연증인『한국 현대연극의 재발견』에 포함돼 있다. 『한국 현대연극의 재발견』은 지금까지 공연되지 못했던 4작품을 묶은 제목이며, 『동승』은 희곡사의 최고 우수작으로 선정돼 송영의 『황혼』과 함께 공연된다.
『동승』이 호평 받는 것은 무엇보다 뛰어난 극작술과 잔잔하면서도 짙게 배어 나오는 인간애의 감동 때문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산사의 어린 중이며, 내용은 자신을 남겨두고 속세로 떠난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다. 동승의 어머니는 사냥꾼과 사랑해 파계한 비구니다. 동승은 엄격한 주지스님의 슬하로 거두어져 산사에서 자라지만 항상 어머니가 자신을 데리러 올 날만 기다린다. 얼굴 모르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불공드리러 온 미망인에게로 향하며, 미망인은 동승을 양자 삼아 속세로 데려가려 한다.
동승에게로 쏠린 관객의 동정이 희망으로 부풀어질 무렵 작가는 극적 반전이라는 절묘한 극작술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동승이 살생을 금지하는 계율을 어기고 몰래 토끼를 잡아 불상 뒤에 감춘 사실이 탄로 난 것이다. 산사가 발칵 뒤집어지고 주지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어머니에게 하얀 목도리를 해주고 싶어 토끼를 잡았어요』라는 동승의 나지막한 고백이 객석의 숨을 『탁』하고 가로막는 듯하다.
이 작품은 작가가 금강산을 여행하던 중 절에서 만난 사미승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다분히 센티멘털해지길 강요하는 내용이지만 작가는 솟구치는 감정을 꽉 짜인 구성 속에 담았으며, 억압적인 종교·기성질서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도 적절히 전달해낸다.「완벽한 연극적 구조」 「비극적·감상적 정조 뒤에 숨겨진 현실비판」이란 찬사를 실감케 한다.
함씨는 해방직전 친일연극활동을 하다가 해방 후 좌익연극에 뛰어들어 47년 월북했다. 전쟁통에 숨진 그는 흔히 천재적 재능을 시대의 불운에 희생당한 작가로 평가된다.「월북작가」로 국내에 알려질 수 없었다가 최근 해금돼 그의 대표작이 첫선을 보인 것이다.
「연우무대」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려 3l일까지 공연한다. 박원근 연출, 김미경·지춘성 등 출연. 744-7090.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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