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목대비 어머니 장례일기 첫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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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사진=연합뉴스]

400년 전 조선 명문 사대부가의 장례가 실제 어떻게 치러졌는지 보여주는 일기가 처음 공개됐다.

연안김씨 의민공종회는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의 어머니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노(盧)씨의 장례절차를 자세히 기록한 '광산부부인 노씨 장례일기(光山府夫人 盧氏 葬禮日記)'를 2일 공개했다. 문중에 전해지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장례일기'는 1637년 노씨가 사망한 뒤 장손 김천석(1604~1673)이 노씨의 장례 절차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노씨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딸이 왕에게 시집가 정비(正妃) 인목왕후가 돼 영창대군도 낳았다. 선조는 광해군 대신 영창대군을 세자로 세울 복안까지 품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인목왕후의 집안은 조선 최고의 가문을 이루었다.

그러나 선조의 갑작스런 죽음이 운명을 바꾸었다. 광해군 5년(1613)의 계축옥사(癸丑獄事)로 노씨의 남편은 역모로 죽고, 손자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돼 불에 타 죽었다. 또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되고, 노씨는 제주도로 유배됐다. 나중에 인조반정으로 서울로 돌아온 노씨는 대비의 어머니로 복권돼 81세까지 살았다.

노씨의 장례는 조선시대에 국장 다음가는 장례인 예장(禮葬)으로 진행됐다. 초상부터 장례를 모시고 제(祭)를 올리는 날까지 무려 95일이 걸린 대규모 행사였다. 11년간 광해군의 칼날을 피해 중으로 가장해 세상을 떠돌았던 노씨의 손자 김천석은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상주가 됐다. 그는 문상객들의 명단과 부의(賻儀) 기록 및 제문 등을 낱낱이 기록했다.

일기에 따르면 습(襲)에 사용한 의복에는 짙은 초록 비단 저고리 1점, 짙은 초록 명주 작은 저고리 1점, 백화 명주바지 1점, 대홍단 큰 띠 1개 등이 들었다. 포목 30필의 가격인 관은 호조에서 담당했고, 역량(役糧) 10석과 빈 가마니 50포는 강원도에서 맡았다. 또 제수미 50석 등은 충청도에서 올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만사(挽詞)' 항목에는 추모사를 모았다. 영의정 이홍주, 예조판서 한여직, 이조판서 이현영, 대간 이목, 대헌 서경우, 좌승지 허계, 충청감사 정태화 등 당대 최고 실력자들이 예도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김시덕 학예관은 "왕가의 장례는 실록에 자세히 나타나 있지만, 명문 사대부의 장례 일기는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며 "사대부가의 장례 원칙이 현장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연합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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