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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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낯설다

티모시 윌슨 지음, 진성록 옮김, 부글북스, 352쪽, 1만3800원

작가 앙리 프레드릭 아미엘은 "인간의 가장 큰 착각은 자기라는 존재가 스스로 생각하는 그대로라고 믿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 책은 '내가 모르는 나, 99%를 찾는 심리여행서'를 표방하고 있다. 그 99%는 바로 무의식이다.

우리가 매초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는 1100만개. 이 중 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최대 40개란다. 나머지 1099만9960개의 정보는 '무의식' 중에 처리된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의식은 정신이라는 빙산의 일부분이 아니라, 빙산 꼭대기에 쌓인 눈덩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산다. 많은 심리학 실험이 이를 증명했다.

마취 상태에서 수술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 빨리 회복할 것이라는 암시를 줄 경우, 그런 암시를 받지 않은 환자보다 입원하는 기간이 짧았다. 환자들이 자신에게 하는 말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또 한 초등학교 학생 모두에게 어떤 시험을 치게 했다. 그런 뒤 교사들에게 몇몇 학생들이 특별히 우수하다고 알려줬다. 실제로는 무작위로 뽑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한 학년이 끝난 뒤 IQ테스트를 했을 때 그 아이들의 IQ가 월등히 높게 나왔다. 교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도록 행동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그 아이들을 특별대우했던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의 마음은 고차원적이고 정교한 사고의 상당부분을 무의식에 넘길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용한다"면서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자기 성찰을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 아니, 자기 성찰은 자기 발전의 원동력 아니던가. 이런 의외의 결론이 나온 근거는 인간의 마음이 논리적이지 않아서다.

애인이 있는 대학생들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를 적어보라고 했다. 그 결과, 실험 당시 애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느냐에 따라 행복감이 크게 달라졌다. 긍정적인 이유를 먼저 떠올린 사람은 더 행복해졌고, 부정적인 이유를 먼저 떠올린 사람은 덜 행복해진 것이다.

한 심리학자는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챙겨봐야 할 항목을 쭉 적어놓고 항목별로 1에서 7까지 등급을 매기는 방법을 사용했다. 몇몇 집을 둘러본 뒤 각 주택의 평균등급을 계산하면 구입해야 할 집이 저절로 결정되는 시스템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더 좋아하는 집이 어느 것인지 더 혼란스러워졌다. 결국 리스트를 던져버리고 본능적인 직감으로 가장 좋은 집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해 조금 덜 생각하라"는 저자의 조언을 빌미로 단순히 맨 처음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최선일까. 물론 절대 아니다. 건전한 정보에 바탕을 둔 본능적 감정이 일어날 수 있도록 먼저 충분히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그 뒤 생기는 감정을 믿고 지나치게 분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저자는 또 무의식을 세련되게 가꾸는 방법으로 "각자가 되고자 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먼저 변화시켜 무의식을 바꿔나가라"고 제안했다. 사람이 한가지 행동을 실행에 옮기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된다는 것. "용기있는 행동을 하면 용기있는 사람이 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 메시지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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