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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조기유학의 원조' 손성원 美 웰스파고 수석부행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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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기유학 보내지 마세요. 적어도 한국에서 대학은 졸업하고 유학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의외였다. 지난달 26일 만난 손성원(孫聖源.58) 미국 웰스파고 은행 수석부행장이야말로 '조기유학의 원조(元祖)'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가서 현지에서 은행가와 이코노미스트로 성공했다. 월가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한국인 중에 한명이다. 그런 孫부행장이 왜 한국의 조기유학 열풍에 우려를 표시했을까.

그는 조금이라도 일찍 유학가야 미국 주류(主流)사회에 끼어들기가 더 쉽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조기유학으로 한국에서 나중에 활동할 수 있는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또래들과 비슷한 경험이나 인맥 등이 없으면 곤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이것도 저것도 다 놓칠 수 있어요.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활약할 수 있으려면 대학은 한국에서 마칠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이 한 일을 남에게 권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孫부행장은 주류사회에서 미국인들과 함께 경쟁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과 같은 경우는 아주 예외적이기 때문에 성공모델처럼 권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孫부행장은 1962년 광주제일고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때 그의 손엔 단돈 1백달러뿐이었다. 그는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생활비를 벌고자 시간당 85센트짜리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했다. 세금을 떼고 65센트가 수중에 들어왔다. 주경야독 끝에 3년 만에 최우등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피츠버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

그는 현재 미국 4위 규모이자 수익률 1위를 달리고 있는 웰스파고은행 2인자이며, 정확한 경제 예측으로 월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코노미스트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인물로 孫부행장을 선정했다. 존 스노 미 재무장관과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으며,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1년에 두 차례씩 그를 직접 만나 경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그는 그린스펀 의장의 후임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孫부행장은 28세 때인 73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의 선임 이코노미스트로 발탁돼 주목받았다. 2년간의 백악관 근무를 마치고 노스웨스트은행 부총재에 올랐다가 웰스파고 은행과 합병하면서 현재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린스펀과의 인연도 그가 백악관에 있을 때 맺었다. 당시 그린스펀은 개인회사를 차려놓고 경제 컨설팅을 하고 있었는데, 孫부행장이 그를 '고용'한 것이다. 그는 "그린스펀이 지금처럼 유명해질 줄 알았다면 그때 좀 더 잘해줄 걸 그랬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30년간 그린스펀과 서로 전문가로서 존중해주는 '프로페셔널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자신이 운좋게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멘터(Mentor.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도 아닌 20대의 젊은 경제학 박사인 孫부행장을 백악관으로 끌어준 사람은 그의 지도교수인 마리너 휘트먼 교수다. 휘트먼 교수가 백악관 경제고문으로 발탁되면서 그를 불러준 것이다.

"유학가서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서너 명의 멘터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내 삶에서도 몇몇 분들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유학생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영어는 고교 시절에 미리 유학을 결심하고 철저히 준비한 덕에 빨리 배울 수 있었다.

"고교 친구인 박삼구(朴三求) 금호그룹 회장과 어울려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지요. 학원도 찾아다니고."

孫부회장은 1년에 절반 이상을 출장으로 보낸다. 부하직원에게 적어도 1년에 한 차례 정도는 출장에 아내를 동반하라고 적극 권장한다. 회사에서 비용도 대준다. "가족의 화목이 가장 중요합니다. 출장을 함께 가면 아내가 남편의 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겠어요. 회사 입장에서도 그게 훨씬 더 이익이지요."

글=서경호,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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