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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사랑 우리옷에 담자”/9년째 한글보급 박상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한글새긴 웃저고리 공모전/“무분별한 외래어 한심”
「우리 웃저고리에 우리 얼담기 공모전」­.
오백마흔다섯돌을 맞는 한글날인 9일 오전 11시 서울 덕수궁 세종대왕동상 앞에서는 「우리민족 문화연구회」(회장 박상호·51) 주최의 이색시상식이 눈길을 끌었다.
낯뜨거운 내용의 외래어가 쓰인 티셔츠를 뜻도 모른채 버젓이 입고 활보하는 청소년들을 병든 외래문화와 범람하는 외국어로부터 지키기 위해 마련된 이 행사의 수상자는 6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친 세종대왕·으뜸·버금·딸림 등 4명.
「훈민정음 서문」을 조형화한 도안으로 최고상인 「세종대왕상」을 받은 조세라양(19)은 현재 울산대 1학년인 국문학도로 『한글학회 회원이고 중학교 교장선생님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중학시절부터 우리말 바로쓰기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으뜸상」을 받은 조윤정씨(27·여·은행원)는 고구려의 사신도를 응용해 백호(호랑이),청룡(용),주작(봉황),현무(거북이) 그림을 바탕으로 우리민족의 드높은 기상을 살려 청소년의 감각에 맞는 4종의 산뜻한 웃옷(티셔츠)을 만들었다.
한글 자·모음을 이용한 도안으로 동료와 함께 「버금상」을 수상한 한글학회 연구원 박불뚝씨(27)는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고유어 어휘 발굴과 실생활 사용에 인색해 우리말이 본디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행사를 마련한 회장 박씨는 9년째 「우리말 보급운동」에 열정을 쏟아온 숨은 독지가.
박씨는 83년 청주법원에서 한글로 이름을 썼다가 『한문으로 쓰지않으면 서류를 받을 수 없다』는 담당직원과 2시간이상 논쟁끝에 법원으로부터 승복을 얻어낸 것이 계기가 돼 한글보급운동에 뛰어들었다.
박씨는 현재 기계공업회사의 전무로 일하고 있지만 매일 출근전 한시간과 퇴근후 4시간을 쪼개 지하철역을 돌며 혼자 한글사랑 유인물을 돌리는등 몸으로 우리말 보급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박씨는 수상한 사람으로 신고돼 19번이나 즉심에 넘겨지기도 했고 86년 1월에는 경찰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한때는 「토큰」이라는 외래어 대신 「버스표」라는 한글을 써야한다고 주장,서울시공무원들과 수개월간의 줄다리기를 벌였으나 끝내 고집스런 행정의 구태를 벗기지 못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박씨는 87년부터 줄곧 각종 국제경기에 출전하는 우리선수들 유니폼에 「KOREA」 대신 「대한민국」으로 써야한다며 5년째 지하철역등에서 단독캠페인을 벌이고 체육부장관앞으로 수십통의 건의서를 보냈다.
사채를 털어 이 운동을 벌이고 있는 박씨는 『이미 15만명으로부터 동의서명을 받아냈다』며 『헌법에 명기된대로 「KOREA」가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국제대회에서도 쓰도록 바로잡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씨는 『언어마저 외제를 무분별하게 선호하는 그릇된 풍조가 하루 빨리 시정돼야 우리의 문화가 꽃필 수 있다』고 강조했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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