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외무 “잘해 나갑시다”주스로 축배/케야르총장주최 오찬서 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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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핵안전 협정 조속히 체결해야죠”/이상옥/“미 대통령 핵감축 발표는 좋은일”/김영남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이 30일 낮(한국시간 1일 새벽) 유엔총회장 4층 유엔대표단 식당에서 주최한 각국 대표들을 위한 오찬에는 에콰도르·짐바브웨·우크라이나 등 4개국 대통령과 북한의 연형묵 총리,그리고 이상옥 외무장관,김영남 북한외교부장 등 18개국 외무장관을 비롯,박길연 유엔주재 북한대사 등 각국 대사등 모두 80여명이 참석.
이날 오찬은 케야르 총장이 이들 4개국 대통령과 연총리를 현관에서부터 안내해 오찬장에 입장하면서 시작.
장관급이상 23명은 케야르 총장을 중심으로 헤드테이블에 일렬로 길게 자리를 잡았는데 연총리는 케야르 총장 자리에서 하나 건너에,김부장은 다시 두자리 건너에 앉았고 이장관은 이들과 반대편의 좌석이 배정돼 식사하는 도중에는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연총리와 김부장은 모두 통역을 대동한채 오찬이 계속되는 동안 시종 옆자리에 앉은 다른나라 대표들과 얘기를 주고 받았다.
○…이상옥 외무장관과 김영남 북한 외교부장간의 역사적인 첫 남북외무장관 접촉은 오찬에 앞서 오찬장옆에 준비된 칵테일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장관은 오후 1시10분쯤 오찬장에 도착,각국 대표들과 인사를 교환하다 10분뒤쯤 김부장이 입장하는 것을 보고 잠시 기다렸다가 먼저 김부장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던 것.
이장관이 먼저 『김부장이시지요. 한국의 외무장관 이상옥 입니다』라고 인사하자 김부장은 얼른 알아보고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고 두사람은 처음 2∼3분동안 상견례를 겸한 일반적인 인사말로 대화를 진행.
남북 외무장관이 얘기하는 도중 유엔본부소속 카메라기자가 옆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이장관이 『비록 오렌지주스지만 이렇게 만났으니 축배를 들자』고 제의,두사람은 『잘해 나갑시다』라며 함께 잔을 부딪쳤다.
○…김부장은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인 오후 2시20분쯤 먼저 자리를 떴는데 오찬장 입구에 지켜서 있던 우리측 기자들에게 『바빠서 먼저 간다』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직행.
김부장은 『이상옥장관과 만났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동족끼리인데 시간날때 자주 만나야지요』라고만 답변한뒤 곧장 유엔본부를 떠났다.
○…이장관은 만찬이 끝난뒤 총회장 2층 로비에서 기자들과 만나,선채로 7분가량 김부장과 나눈 대화내용을 소개했는데 다음은 남북외무장관이 인사말을 제외하고 주고받은 대화내용.
▲이=우리가 유엔에 함께 들어왔으니 앞으로 유엔내에서 서로 협조해야죠.
▲김=그렇게 해야죠. 무엇보다 단일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이=단일의석은 통일이 되면 당연히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것에 앞서 통일이 되도록 노력해야지요. 통일을 위해선 남북이 다같이 노력해야지 어느 한쪽만 노력해서는 안됩니다.
▲김=통일지향적으로 노력해 나갑시다.
▲이=연총리께서 2일 하실 기조연설이 어떤 내용인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핵안전협정을 조속히 체결해야죠.
▲김=(즉답을 회피한채) 부시 미 대통령이 발표한 내용을 잘알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이=협정체결을 빨리 하는게 북한에 도움이 될 겁니다. 기회 있으면 다시 만나서 얘기하시죠.
▲김=그러죠. 좋습니다.
○…이날 오찬에서 이장관은 김부장과 첫 접촉을 가졌으나 연총리와의 만남은 끝내 불발.
이장관은 기자들에게 『만찬이 끝난뒤 연총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인사나 드리려고 가던중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과 마주쳤다』면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연총리를 찾아보니 이미 오찬장을 떠난 뒤였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
이날 오찬은 주최측의 비공개원칙에 따라 보도진의 출입을 전면 통제. 그러나 유엔본부소속 카메라기자와 미 AP통신 등 극히 제한된 숫자의 사진기자들에게는 오찬장옆 칵테일장까지만 20분정도 취재가 허용됐는데 북한측의 기록영화 제작소 소속 직원 1명은 사전에 출입증을 발급받아 이곳까지 들어가 남북외무장관간의 접촉장면을 16㎜ 비디오로 촬영.<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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