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시세 90% 대출 ? 알고보면 뻥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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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을 돌며 주택담보 대출을 물색하던 회사원 유모(39)씨는 최근 아파트 입구에 붙은 대출 광고 전단지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대출 금리가 최저 4%대이고, 아파트 시세의 80%까지 대출을 해준다고 했다. 유명 금융기관의 로고까지 붙어 있어 믿음이 갔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전단지는 대출모집인이 임의로 만든 광고였다. 유씨는 "제도권 금융기관과 무관한 데다 전단지에 적힌 것보다 3~4%나 높은 금리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대출을 포기했다.

◆전단지 대출 광고 극성=전단지를 통한 대출 영업은 수도권 아파트 단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단지를 붙이기 힘든 주상복합 아파트 등에는 우편물이 발송되기도 한다. 유명 금융기관의 로고와 등록번호까지 버젓이 들어 있어 제도권 금융사의 안내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이들은 보통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신경 쓰지 않는 데다 높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적용하고 있어 대출 가능 금액이 제도권 금융사보다 훨씬 많다. 현재 은행권은 투기지역의 경우 DTI 40%.LTV 40%를, 캐피탈이나 보험사.상호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보통 DTI 50%.LTV 50% 정도를 적용한다.

대출모집인들이 제시하는 조건은 근사하다. 실제로 주택투기지역의 한 아파트 현관에 붙은 전단지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보니 "투기지역이지만 제2금융권 특판 상품을 이용하면 70% 이상 대출이 가능하다"며 "대출 금액의 1%를 수수료로 내면 시세의 90%까지 대출을 받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험한 함정"=금융감독원은 전단지 대출이 제도권 금융기관과 무관한 대출중개업체가 하는 것으로, 금융감독 당국의 관리를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경고한다. 금감원은 "특히 일부 대출중개업체들은 개인신용정보를 불법으로 유출해 밀거래하고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서민금융지원팀 조성목 팀장은 "대출 금액이 많은 대신 높은 금리나 별도의 수수료를 요구하는 업체가 많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조 팀장은 "이런 업체들과 거래할 경우 직장명.신용등급 등 금융거래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신용정보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계 대부업체 반사이익=외국계 대부.캐피탈 업계도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는 외국계 업체는 메릴린치가 출자한 페닌슐라캐피탈, 리먼브러더스가 세운 코리아센트럴모기지, 씨티그룹 자회사인 씨티파이낸셜 등이다.

이들은 적게는 6%대의 대출금리에 LTV도 최대 75~85%로 높게 적용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주택담보대출 영업을 시작한 페닌슐라캐피탈은 영업 7개월 만에 2000억원이 넘는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저축은행중앙회 하태원 선임조사역은 "은행뿐 아니라 제2금융권에 대한 대출규제 강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는 외국계 대부업체로 대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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