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로 넘어간 “팽창시비”/확정된 예산안 왜 말많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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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야 증가율주장 4배차이/재정확대 배경 국민설득 못해
33조5천50억원의 정부 예산안이 확정됨에 따라 내년 예산편성은 이제 국회심의만 남겨 놓게 됐다.
야당이 팽창예산을 내세우며 대폭 삭감을 벼르고 있지만 예년의 경험이나 의석수,내년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사업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할때 정부예산안이 크게 수정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 예산안은 편성 초기부터 팽창여부를 둘러싼 논쟁에 휘말려왔다.
예산증가율은 기준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나고 이것이 논쟁의 주요 초점이 됐다.
92년도 예산은 91년도 추경예산을 포함한 최종 예산을 기준할 경우 6.8% 늘어난 것이지만 국세로 거둬 지방에 내주는 양여금을 포함하면 8.7%,91년 본예산과 비교하면 24.2%가 늘어난다.
또 91년 최종예산에서 90년도 세계잉여금으로 충당된 부분을 뺀 세입예산규모로 보면 17.3%가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기준에 따라 증가율이 천차만별로 나타나자 같은 예산을 놓고 정부는 6.8%증가를 내세우고 야당을 포함한 재정확대비판론자들은 24.2%를 내세우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실제로 내년도 예산은 세입예산증가율 17.3%(내년도 세수초과를 감안하면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만큼 늘었다는게 객관적일듯 싶고 이는 정부가 내년도 경상성장률로 잡고 있는 14.5%를 다소 웃도는 수준이다.
재정규모를 어느 잣대로 재건 전년대비 증가율로 따져보는 것은 대체로 무익하다. 오히려 GNP(국민총생산)에 대한 재정규모 또는 국민의 조세부담률이 유용한 지표가 될 수 있으며 한국의 경우 이같은 수치는 경제발전수준 등에 비해 다소 낮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듯 싶다.
더욱이 각종 복지수요의 증대,이미 심각한 부족현상을 빚고 있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확대,시장개방에 따른 농수산업의 구조조정등 돈들어갈 곳은 갈수록 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예산안이 팽창시비에 휘말린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재정기능의 확대. 결국 예산증대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설득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기왕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이 이같은 설득을 더욱 어렵게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내수과열로 표현되는 현재의 경기상황에서 「세입내 세출」이라는 명분하에 재정규모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문제다. 특히 재계는 총수요관리를 위해 금융긴축,결국은 민간여신억제를 내세우면서도 재정은 관리대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 대해 그동안 노골적인 불만을 표현해왔다.
예산과 관련,정부는 낭비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대규모의 세수초과와 추경예산편성을 되풀이해 온 파행적인 예산편성관행을 지양해야 한다.
이런 노력없이는 대국민설득의 기본인 정부 신뢰감이 생겨날 수 없다.
또 사회간접자본 투자확대는 조달에 사실상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느니만큼 반드시 적절한 수요감축책이 병행돼야 한다.
예산편성의 시시비비는 앞으로 국회에서 가려지게 되어 있지만 올해의 예산편성은 벌써부터 팽창시비와 함께 선심예산의 비난이 일고 있고 앞으로 국회 심의과정에서 이같은 선심과 낭비요인의 제거보다는 또다른 나눠먹기로 변질될 우려가 적지않다.
국회의 예산심의 기능은 가장 강력한 행정부 견제수단이며 국민에 대한 최대의 의무임에도 이를 위한 노력은 사실상 방기되어 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산규모의 확대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말뿐인 선심·팽창 비난보다는 예산의 구석구석을 파헤쳐 낭비와 비효율을 적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국회 본연의 기능발휘가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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