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경기 회복이 능사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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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증권 투자자가 가장 '열 받는' 경우는? 종합지수는 마구 오르는데, 자기가 산 종목만 죽 쑤고 있을 때다. 주식이 함께 폭락하면 집단 체념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덜 쓰리다. 하지만 지수는 오르는데 내 주식만 떨어지면 박탈감은 두 배가 된다. 올 하반기 주식 시장이 그랬다. 소수의 외국인 선호 종목만 올라 '개미들'의 체감지수는 종합주가지수와 어긋난 것이다. 오늘의 경제와 사회의 모습도 꼭 이런 모양이다. 20세기 후반 경제에서 우리는 두 모델을 경험했다. 하나는 '떡고물이 풍부한 경제'의 모델이다. 성장을 하면 그 과실이 비교적 골고루 퍼지는 경제를 일컫는다. 한때 서구의 복지국가 모델은 성장.분배.안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었다.

다른 하나의 모델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신경제 모델'이다. 이것은 약간 과장하면 '승자가 모든 것을 먹는(Winner takes all!)' 모델이다. 떡고물이 적기 때문에 아래쪽으로 잘 내려가지 않는다. 무대가 세계화됨에 따라 경쟁력이 유달리 강조되지만 그것을 갖춘 기업이나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잘 나가는 소수와 소외된 다수의 격차는 그래서 더 벌어진다. 신경제의 화신 미국이 지난 20년간 세계에서 빈부 격차가 가장 빨리 확대된 나라라는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부 장관의 진단도 과장만은 아니다.

이 물결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오고 있다. '양극화'의 물결이다. 수출은 사상 최대라지만 소비와 투자가 꽁꽁 얼고 있는 현상도 양극화의 한 양상이다. 반도체.자동차 등 5대 품목이 전체 수출의 46%를 차지하고, 수출 증가분의 대부분을 설명한다. 그런데 고용은 거꾸로 가고 있다. 3백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 비중은 계속 줄고, 중소기업 비중은 늘고 있다. 그것도 증가된 고용은 비정규직의 몫이 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 처우가 가장 낮고 '고용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나라에 한국이 으뜸으로 꼽힌다. 그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강아지 오줌만 한 아랫목만 따뜻하고 넓은 아랫목은 발이 시린' 사회로 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현상이 모든 세대에서 확인된다는 것이 더 문제다. '노후를 준비하지 않은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 세대로부터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인 60대 이후, 직업과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중년의 위기를 겪는 40~50대, 대학 졸업 시에 두 명 중 한 명이 취업할 뿐인 청년 세대 등 모든 세대가 '실존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길 원하는 자아 실현의 욕구는 더욱 커지는데, 생활 세계에서는 도처에 '추락의 덫'이 기다리고 있다.

성장률의 회복이 자동적으로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 순진한 사람들만이 그렇게 생각한다. 경제 성장과 삶의 질의 이음새는 이미 풀어져 있다. 이를 '어긋난 톱니바퀴의 역설'이라 부를 수 있다. 소수의 글로벌 기업과 소수의 인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제 발전을 추구할수록 실존의 위기를 경험하는 다수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엷어지는 역설이다.

따라서 지금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되는 것을 과장할 일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지금 다수의 국민은 오르지 않을 주식을 사고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성장률이 높아지는데 체감 지수가 그대로이거나 악화되면 국민은 더 '열받게' 돼 있다.

경기가 풀리면 모두 잘 될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 전체가 '어긋난 톱니바퀴'의 이빨을 새로 맞추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 정부나 기업.시민사회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세대의 다수 국민이 실존의 위기를 벗어나 나름대로 즐겁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상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가오는 경기 회복기를 새로운 사회적 책임의 얼개를 만들 기회로 삼는 지혜와 안목이 절실하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