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루브르 작품전' 주최 못한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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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이 보험료 낼 돈이 없어 '루브르전' '인상파전' 등 화제가 될 만한 수준 높은 '블록버스터급 전시'는 아예 열지도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다른 나라와의 쌍방향 문화 교류가 힘들어지고, 불필요한 외화가 유출되는가 하면 관람료가 비싸지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국박'이 '루브르전'을 못 하는 이유?=국제 관례상 국립박물관이 외국의 국립급 박물관으로부터 작품을 빌릴 때는 대여료가 없다. 대신 작품 이동 등에 따른 보험료는 내야 한다.

프랑스 국립 루브르박물관의 주요 작품 70여 점으로 구성된 '루브르전'(지난해 10월 24일부터 국박 전시 중)의 경우 만약 국박이 이 전시를 기획했다면 우선 대여료는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대신 대여작의 훼손.도난 등에 대한 보험료 17억원만 지불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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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1년 전시 예산은 20억원. 단일 전시에 예산의 대부분을 쓸 수 없는 처지였다.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1일 "'루브르전'과 '인상파전' 등 시중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블록버스터 전시에 대한 제안을 가장 먼저 받았으나 보험료가 없어 엄두도 못 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큰돈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는 대부분 민간 기획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국박은 장소만 빌려주는 형편이다.

그러나 민간 기획사가 전시를 기획할 경우 상당한 액수의 돈이 '따로'들어간다. 특히 수억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작품 대여료가 문제다. 김영순 미술평론가는 "작품을 빌릴 때 '작품 수리비' 명목으로 상당한 액수를 기증해야 한다. 사실상의 대여료를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루브르전'의 작품 대여료는 10억원, 지난해 8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인상파전'도 미국 클리블랜드 공립 미술관에 수억원의 대여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관장은 "만약 국박에서 이런 전시를 직접 연다면 현재 1만원(성인 대상)인 관람료가 5000원 이하로 뚝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안은 없나=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국립박물관이 보험료에 발목이 잡히지 않도록 하는 '지불보증제도'가 마련돼 있다. 엄격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알찬 전시에 대해 정부가 보험료를 대신 내 주는 제도다. 국박 정책과 관계자는 "보험료 문제가 해결되면 1만~1만5000원에 달하는 관람료가 30~40%로 떨어질 수 있다. 또 작품 보존 등의 기술 교환이나 상대 국가에 한국작품 전시 개최를 요구하는 등 쌍방향 문화 교류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기획사가 끼면 장사에만 그친다"고 설명했다.

이번 '루브르전'의 총예산은 약 40억원. 손익분기점은 관람객 40만 명으로 5개월에 걸친 전시 기간 중 한 달을 남겨 두고 있지만 최근 손익분기점에 이르렀다고 업계 관계자는 밝혔다.

김 관장은 "뮤지컬 시장처럼 전시 시장도 갈수록 덩치가 커지고 있다.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소화할 수 있는 시장은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에선 대여료를 챙길 수 있는 한국 시장을 아예 '밥'으로 보고 있다. 갈수록 대여료를 통한 외화 유출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박은 최근 네덜란드 대사로부터 '반 고흐전'을 제안받았다. 김 관장은 "보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런 전시도 외부 기획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밝혔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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