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천년학'이 4월에 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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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최근에 들으니,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4월 초 개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5월 열리는 칸영화제의 초청 여부가 확정되기 이전이라는 점에서 좀 뜻밖입니다.

알다시피 임 감독은 최근 한국영화의 세계 영화제 진출에 물꼬를 튼 장본인입니다. 1987년 '씨받이'(베니스.여우주연상)는 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베를린.은곰상) 이후 20여 년 만에 세계영화계의 좌표에 한국영화를 다시 빛나게 했습니다. 국제영화제 중에도 가장 콧대 높은 칸의 문턱을 넘어선 것 역시 그였습니다. 2000년 '춘향뎐'이 한국영화 최초로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됐죠. 2년 뒤 '취화선'으로 마침내 감독상을 받으면서 그는 명실상부한 '국민감독'으로 불립니다.

자연히 '천년학'도 공공연히 칸영화제 초청에 대한 기대감이 나도는 마당입니다. 제작사 키노투의 김종원 대표는 "그보다도 국내 관객에게 먼저 보이고 싶다는 것이 감독님의 뜻"이라면서 "찍은 필름을 묵히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 전합니다. 촬영은 지난해 말 끝났고, 현재 후반작업이 한창입니다. 정확한 개봉일자야 심의가 완료돼야 공표할 수 있지만, 일정상으로는 4월 초가 문제없다는 얘기죠. 재미있는 점은, 이 경우 '천년학'의 개봉일이 '서편제'와 비슷해진다는 겁니다. 1993년 4월10일이었죠. '서편제'는 서울 단성사 한 곳에서 개봉해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모았습니다. 당시 한국영화 역대 흥행 신기록이었죠. '국민감독' 이전에 '흥행감독' 임권택의 저력을 상기시키는 대목입니다.

사실 그의 저력은 60년대 초 데뷔 이래 40여 년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100번째 작품에 이른 필모그래피 자체가 말해줍니다. 감독 자신은 "부끄러운 영화를 많이 찍었다"고 돌이키곤 합니다만, 창작자로서 각고의 노력과 대중의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에 이를 수 없었겠지요.

충무로가 임 감독에게 존경을 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계 한참 후배인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천년학'의 예고편 제작을 맡겠다고 나섰다는군요. '천년학'이 관객의 마음속으로 훨훨 날갯짓하기를 기원합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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