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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 씨뿌린 남북화해/동시가입과 앞으로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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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협력관계 다져야 통일 밑거름/성취감에 앞서 현실문제 신경쓸때
동서냉전의 마지막 대결장으로 남아있는 남북한이 17일(현지시간)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비록 분단상태의 변화가 당장 기대되는 것은 아니지만 남북한 관계와 지역긴장상태에 새로운 전환의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국내외의 기대가 쏠리고 있다.
우선 이번 유엔가입으로 한국은 48년 유엔결의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받았으면서도 국제평화문제를 다루는 이 국제기구에서 43년간 기아로 처리되었다가 호적신고를 한 셈이다.
또 그동안 지루하게 전개되어온 유엔에서의 남북대결과 최근까지의 단독·동시,혹은 단일의석가입안을 놓고 벌인 남북한의 대립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측 주장대로 동시가입이 이루어져 서러웠던 한시대가 우리의 주도로 마감된다는 의미도 있다.
여기에 한국이 인정받고 있는 경제적 지위와 유엔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회원국이 된 점 등은 이같은 효과를 증폭시킬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소련의 변화로 유엔이 동서간 혹은 서방과 제3세계간 이념대결의 설전장에서 화해와 협력,그리고 갈등의 조정무대로 변화가 예고되고 미국등 서방의 입김이 강화될 조짐 등은 한국외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이 국제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것임을 밝히고 있고 최근 소련변화의 충격으로 과거와 같이 유엔에서 대결적 입장만을 취하지 못할 것이란 점도 한국외교엔 큰 득이 되 고 있다.
우리정부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유엔가입에 의미를 부여하고 축제분위기에 젖는 것도 이같은 이유와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유엔가입을 남북간 대결입장이 아니라 우리정부가 추구해온 동반자적 관계나 유엔자체를 냉정히 뜯어보면 이같은 의미 못지않게 많은 과제가 있음도 사실이다.
우선 그 역할확대가 기대되고 있지만 유엔은 원칙보다는 현실에 충실한 기구다.
남북한 문제만 보더라도 유엔은 48년 남한만을 합법정부로 인정했고 한국전쟁땐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했으나(이 때문에 오랫동안 한국은 단독가입을,북한은 동시가입을 주장해왔었음) 이에 대한 아무런 수정이나 무효선언없이 남북한을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이는 국제정치상의 역학관계가 낳은 것이지만 모순된 조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같은 회원국이 된 북한이 협력적 관계설정을 하지 않을 경우 유엔가입자체가 통일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긴 아직 이르다.
북한은 대외관계나 남북관계에서 과거 입장에 상당한 변화를 시사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구체성을 띨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또 유엔회원국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외교적 입장이 크게 강화되는데도 한계가 있다.
유엔가입 자체가 우리의 외교목표의 우선순위로 설정됐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당장 그것이 결과할 효과나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엔이 창설이래 2차대전의 전승국 중심으로 움직여온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유엔이 앞으로 서방주도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고 한국의 이들과의 유대는 한국입장이 강화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이 일찍 유엔에 가입하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있으면서도 유엔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은 유엔의 성격과 회원국들의 한계를 잘 말해 주는 것이다.
또 유엔회원국이라는 지위가 다른 국제기구나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지위를 특별히 격상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지구상엔 유엔회원국이 아닌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외교나 대북한 관계는 유엔가입 성취감에서 가능한 빨리 현실외교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엔 지금까지 업저버자격 때문에 우리가 책임질 필요가 없었던 국제분쟁·군축·환경문제·지역경제협력 등에 대한 입장정리 등이 포함될 것이다.
또 변화가 예상되지만 과거 대결적 분위기를 청산할지가 아직 불분명한 북한을 가능한 빨리 동반자적 관계로 유도하는 것도 큰 과제가 될 것이다.<유엔본부=박준영특파원>
◎“정의로운 세계질서 형성에 적극 동참”/남한 이상옥외무 수락 연설<요지>
오늘은 대한민국이 유엔의 후원하에 탄생한지 43년만에 유엔의 정회원국으로 새출발하는 날이기에 한국민 모두에게 매우 뜻깊은 날이다.
대한민국은 동서화해를 바탕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국제질서하에 유엔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오늘날 정회원국으로서 응분의 역할을 다해나갈 것이다.
더욱 뜻깊은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남·북한은 국제평화와 번영을 위한 유엔의 노력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여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세계평화의 날」이기도 한 오늘,남·북한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불안한 휴전을 유지해온 남·북한이 오늘 유엔헌장의 의무를 수락하기로 선언한 것은 한반도를 40년 이상 지배해온 냉전구조가 질적인 변화를 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북방외교는 주변국가들과의 새로운 선린관계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남·북한간 불신과 대결의 장벽도 머지 않아 화해와 협력의 훈풍에 무너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대한민국은 정부수립과 한국전,그리고 전후복구에서 보여준 유엔의 도움을 잊지 않고 있다. 지난 반세기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개도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이제 국제평화와 안전,군축 및 군비통제,국제경제 및 사회개발,인권존중과 사회정의 실현,환경·마약·범죄 등 유엔을 통한 범세계적 문제해결노력에 있어 응분의 책임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한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유엔가입을 지원해준 유엔회원국에 감사드리고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정의와 법의 지배가 실현되는 세계질서 형성에 적극 동참할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
◎“남북 하나의 의석으로 되는날 꼭 올것”/북한 강석주 외교부부장 연설<요지>
유엔에 대한 세계인민들의 기대가 날로 커가고 유엔의 역할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부각되고 있는 시기에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한 것은 참으로 의의있는 일이다.
최근 유엔은 세계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고 나라들 사이의 친선과 협조를 증진시키기 위한 활동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오늘 유엔이 그 사명을 다하자면 자기 역할을 더욱 높여야 한다.
인류가 지향하는 새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불평등한 낡은 국제질서를 없애고 공정한 국제질서를 세워야 한다.
유엔은 상호존중과 내정불간섭,평등과 호혜의 원칙에 기초한 새로운 국제질서를 세우는데서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유엔회원국으로서 유엔헌장에 밝혀진 목적과 원칙에 충실할 것이며 유엔의 활동에 참가하여 응당한 기여를 해나갈 것이다.
자주·평화·친선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는 우리 공화국 정부의 대외정책은 유엔헌장의 목적 및 이념과 일치한다.
우리 국가의 정치철학은 모든 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하여 복무할 것을 요구하는 주체사상이다.
우리 인민은 자체의 힘으로 우리식 사회주의를 건설한데 대하여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길로 계속 나아갈 굳은 결의에 넘쳐 있다.
오늘 우리 인민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조선의 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우리 겨레의 운명에 관한 문제일 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평화위업의 견지에서 봐서도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절박한 문제다.
오늘은 비록 북과 남이 따로따로 유엔에 들어왔지만 우리 인민의 단합된 노력과 성원국들의 협력에 의해 하나의 의석을 차지하게 될 날이 꼭 오리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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