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원료값 담합 9개 사 1051억 과징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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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LG화학 등 국내 10개 석유화학업체가 서로 짜고 제품가격을 올렸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 및 10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 가운데 SK.LG화학.대한유화.대림산업.효성은 불공정 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그러나 석유화학 업계는 과징금에 고발까지 당한 것은 억울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1990년대 초 정부의 생산량 조절 '행정지도'를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공정위는 1994~2005년 11년 동안 유화업계 10개사가 담합해 각종 플라스틱 원료가 되는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과 폴리프로필렌(PP)의 가격을 적정가격보다 15%가량 높게 받아왔다고 20일 밝혔다. 공정위는 이 때문에 비닐이나 플라스틱 제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가 1조5600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덧붙였다.

◆사상 셋째 규모 과징금=이번 과징금은 2001년 군납 유류 입찰 담합 사건(1211억원)과 2005년 KT 등 시내전화 사업자의 가격 담합 사건(1152억원) 이후 셋째로 큰 액수다. 공정위에 따르면 10개사는 94년 4월부터 사장단.영업임원.팀장 회의 등을 통해 품목별로 기준가격을 담합해 결정한 뒤 이를 근거로 회사별 판매가격을 정해왔다. 가격 담합 덕분에 91~93년 적자 상태였던 이들 회사는 외환위기를 겪은 97~98년을 빼고는 줄곧 흑자를 낸 것으로 공정위는 파악했다.

이번 조사에서 공정위는 자진신고 형식을 통해 조사에 협조한 호남석유화학.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 3개사에는 제재 수위를 크게 낮추기도 했다. 특히 호남석유화학은 공정위 조사에 최초로 정보를 제공해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의 적용을 받아 과징금과 검찰 고발을 모두 면제받았다. 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은 검찰 고발을 피했으며, GS칼텍스와 씨텍은 불공정거래 혐의의 공소시효인 3년 전 담합 행위를 중단해 검찰에 고발되지 않았다. 공정위는 21일 정유업계의 가격 담합에 대해서도 과징금 부과 등 제재조치를 내릴 예정이다.

◆업계, "행정지도를 따른 것"=업계는 가격 담합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90년대 초 서산단지 내 대규모 신규 증설이 허용되면서 과당경쟁과 산업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자 정부가 신규투자 억제, 생산 감축, 판매량 배분 등의 직.간접적인 행정지도를 내렸고, 업계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업계는 공정위 심사과정에서 당시 행정지도에 나섰던 옛 상공부 직원이 직접 변론까지 했으나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 하락과 중국의 경기 안정 정책으로 가뜩이나 업계가 어려운 마당에 무거운 과징금을 물리는 게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 정재찬 카르텔조사본부장은 "옛 상공부의 행정지도는 생산량 조절을 통해 공급 과잉을 막자는 것이었지 가격을 담합하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박혜민.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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