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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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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려 예종은 기생 영롱과 일은에게 자주 비단 등의 물품을 하사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팁이었다. 당시 기생은 모두 국고로 월급을 주는 관기였으니까 별도의 팁이 필요없었지만 재주 뛰어난 기생을 포상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고종 31년(1244) 2월 잔치때는 기생들에게 비단 두필씩,광대들에게 은병 한개씩을 각각 주었다. 충숙왕대에 이르러서는 궁중잔치때 기생들에게 물품을 너무 많이 내려 국고가 텅빌 지경이었다. 기생들이 머리에 붉은 비단을 둘러주는 것으로 대표된 고려시대의 기생팁을 「전두」라 했다.
조선조에서는 궁중연회후 기생과 광대들에게 약간의 쌀을 주는 팁 관습이 일반 양반사회에까지 널리 퍼져나갔다. 팁의 명칭도 다양했다. 행하·유채·해의채·젓가락돈·입물림돈·인정미·좌전·예전·복전등. 품삯외로 얹어주는 돈을 「행하」,수청든 기생에게 주는 팁을 「해의채」(해옷값),돈만지기를 삼가는 사대부들이 젓가락으로 동전을 집어주는 기생팁을 「젓가락돈」이라 했다.
기방팁의 액수는 벼슬에 따라 달랐다. 당하관은 술값의 9%,당상관은 18%였다. 구한말 중구원고문 이지용은 자신의 풍도를 과시하고자 당시 10환만해도 과한 기생팁을 50환이나 주어 황성신문에 기사화되기까지 했다. 근래들어서는 「화대」「촌지」「봉투」라는 팁명칭도 생겨났다.
서양의 팁유래는 확실치가 않다. 18세기 영국 다방에서 카운터위에 「신속배달」(To Insurc Promptness)이라고 쓴 상자를 놓아두고 동전을 집어넣은 손님에게 차를 우선적으로 가져다 준데서 비롯됐다는 속설이 있는 정도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팁국량이 확실히 컸던 것 같다. 한은통계에 따르면 올상반기에 뿌려진 팁만도 작년 동기비 18%나 증가한 1천6백50억원이고 연말까지는 3천5백억원에 이르리라는 추산이다.
팁의 증가율이 국민총생산(GNP)증가율의 두배나 된다. 엄청난 팁 인플레다. 요사이 룸살롱과 골프장 캐디팁이 각각 5만∼10만원,2만∼2만5천원이라고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팁풍토다. 졸부풍의 비뚤어진 팁관행이 하루속히 바로 잡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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