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비리,뿌리를 제거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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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2일 경찰청 특수대가 적발한 종로소방서의 비리가 특정 소방서에만 국한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건물을 신축해본 사람이나 현재 업무용 건물을 소유하고 있거나 업소를 가진 사람이면 거의 빠짐없이 소방서 직원들에게 금품을 건네준 경험을 갖고 있다. 이로 미루어 소방서안에 이번에 드러난 것과 같은 상납체계가 있으리라는 것은 너나없이 짐작해 왔던 일이다.
말하자면 이번 종로소방서의 비리는 오랫동안 관행화되어 왔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부정의 한 가닥이 드러난데 불과한 셈이다.
따라서 이번 일을 계기로 당국이 해야할 일은 이런 비리가 왜,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데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거쳐 그 근원을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는한 소방서의 비리는 앞으로도 계속 빚어질 것이며 이번 종로소방서의 경우는 그저 운이 나빠서 사건화된 경우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은 현행 소방법규다. 현재 신축건물의 경우는 준공검사를 받으려면 소방안전점검 필증을 받아야 하고 일정 규모이상의 업소들은 정기적으로 소방안전점검을 받게되어 있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금품을 주고받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건물주나 업주들은 소방법규가 너무도 까다롭고 비현실적이어서 법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뇌물을 건네게 된다고들 말한다. 이에 대해 소방서측은 법규나 단속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비를 싸게 하거나 소방안전 시설 유지에 필요한 경비를 줄이기 위해 뇌물을 건네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어느쪽 주장이 옳은 것인가. 이번 기회에 이것을 분명히 가려낼 필요가 있다. 만약 건물주나 업주의 말대로 현행 법규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어서 흔히들 말하는대로 「돈뜯는 명분」이나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루빨리 현실화해야한다. 그러나 법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소방설비 미비를 뇌물로써 덮으려는 사회의 관행을 깨기 위한 엄격한 법적용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널리 의견을 구해야 한다고 본다. 소방당국만의 검토로는 그 결과는 보나마나한 것이 될 것이다. 소방당국은 물론,건물주와 관계 전문가가 한 자리에 모여 법과 현실을 함께 저울질하여 바람직하면서도 현실에도 맞는 법과 행정체계를 새로 만들어 내야 한다.
오랜 공직생활을 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만들어 사회에 매장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아니라 국가적 손실이다. 공직자의 부정과 비리가 용인될 수는 없는 문제이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빚어내는 구조적 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해 소방경찰관들이 명예롭게 봉직할 수 있는 여건과 풍토를 조성하는 일이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으레 해온 것처럼 떠들썩한 일제 감사나 벌이는 식의 뒤처리를 해선 안된다. 각계의 의견을 모아 비리와 부정의 구조에 대한 수술에 착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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