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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CEO 한류' 약효 만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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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라이릴리는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과 발기부전 치료제 '시알리스'로 유명한 미국의 세계 10위권 다국적 제약회사. 이 회사의 한국지사인 한국릴리는 이달 초순 큰 경사를 맞았다. 1982년 한국 진출 후 25년 만에 한국인 사장이 처음 부임한 것이다. 홍유석(42) 사장이다.

그는 92년 미 일라이릴리 본사에 입사해 글로벌 리더로서 커 왔다. 95년부터 7년간 한국릴리에서 일한 경험도 갖췄다. 홍 사장은 "(나의 부임은) 한국인들의 비즈니스 능력이 미 본사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젠 영어 잘하고 국제 감각을 갖춘 글로벌 인재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다국적 제약업체들은 신약개발과 마케팅이라는 양대 축으로 오랜 세월 움직여 와 경영 스타일이 다소 보수적이다. 하지만 이들 회사는 개도국인 한국에서 한국인 지사장 발령을 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지난 1년간 15위권 안에 드는 다국적 제약사의 한국법인 사장에 새로 부임한 4명 가운데 3명이 한국인이었다. 항암제 '탁솔'의 한국BMS제약 박선동(47) 사장, 두통약 '타이레놀'의 한국얀센 최태홍(50) 사장이다. 한국노바티스는 지난해 7월 종전대로 외국인을 신임 사장으로 앉혔다.

박 사장은 2001년부터 한국BMS제약에서 일하다 2005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홍콩BMS제약 사장을 역임했다. 최 사장은 2000년부터 필리핀 얀센의 사장으로 5년간 일한 뒤 귀국해 한국얀센 부사장으로 있다가 지난달 초 사장에 임명됐다.

이로써 다국적 제약업계의 한국인 한국지사장은 한국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김진호(57) 사장을 포함해 4명이 됐다. 한국계 캐나다인인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이승우(49) 사장까지 치면 5명이다.

다국적 제약업계에 한국인 사장이 뜨는 데는 1세대 사장들의 선전이 큰 발판이 됐다는 지적이다. 이희열(42) 바이엘헬스케어 차이나 사장과 박제화(57) 대만.홍콩 얀센 총괄사장이 그들이다.

'크리스 리'로 더 알려진 이희열 사장은 90년 후반 외환위기 무렵 한국BMS제약 사장을 맡아 연평균 50% 이상의 매출 성장을 주도했다.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BMS오세아니아 사장으로 영전한 뒤 2005년엔 바이엘로 스카우트됐다. 박제화 사장도 93년부터 한국얀센 사장을 맡아오면서 매출을 세 배 이상으로 키웠다. 박 사장은 "10여년 전부터 한국얀센 직원들에게 해외경험을 많이 쌓게 한 일이 요즘 결실을 거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근래 한국지사의 차세대 리더들이 본사 또는 주요 거점 본부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GSK의 양윤희 홍보이사가 GSK의 아태지역 총괄 홍보임원으로, 한국노바티스의 임상의학부 책임자인 고재욱 전무가 노바티스의 아태지역 임상의학부 책임자로 발령 났다. 지난해 5월에는 한국화이자의 류은주 마케팅 부장이 미 뉴욕 본사의 브랜드 매니저로 승진했다.

다른 업종에서도 외국계 기업의 한국지사장을 한국인으로 채우는 일은 다반사처럼 됐다. 주한 외국계 기업 모임인 한국외국기업협회 소속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60% 이상이 이미 한국인이다.

신박제 필립스반도체 회장과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등 여러 업종에서 성공한 한국인 사장이 속출한다. 한국릴리의 홍 사장은 "다국적 제약업계의 한국인 사장 러시는 '이제 시작'"이라고 전망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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