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그대로가 최상의 개발”/골프장 건설반대 단식투쟁 이장오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산 훼손될때마다 뼈를 깎는 아픔”/직장 그만두고 자연살리기 나서
『산이 훼손되는 현장을 볼때마다 내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럴땐 그대로 공사현장에 누워버리고 싶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의 명산이 골프장을 만드는 폭약으로 망가지고 잔디가꾸기용 농약으로 얼룩지는 것을 더이상 볼 수 없어 단식투쟁을 시작한다는 월간 「사람과 산」의 편집위원이자 한라산악회 회원인 이장오씨(43)는 비장한 표정이었다.
더부룩한 구렛나룻이 인상적인 이씨는 25년동안 산을 타온 중견 산악인.
제주에서 태어난 이씨는 고등학교 1학년때 형을 따라 해뜨는 것을 보기위해 백록담에 오른 것이 반평생 산사나이가 된 계기가 됐던 것.
이씨가 골프장 등의 자연파괴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지난해 2월 「사람과 산」에 현장고발기사를 쓰게 되면서부터 였다.
태백산의 주목그루터기가 마구 파헤쳐지고 수력발전소 건설로 적상산이 강물에 묻히는 현장 등을 직접 보게된 이씨는 지난해 10월부터는 서울에서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본격적인 자연살리기 운동에 나섰던 것.
훼손현장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주민들의 하소연을 듣고,해당관청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구하고….
허름한 차림에 산속을 휘젓고 다니다 간첩으로 신고된 적도 있다는 이씨는 조상의 정기가 서린 산들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는 비극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개탄했다.
『골프장건설로 인한 자연훼손은 그 심각성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산은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개발이지요. 더이상의 골프장 설치는 우리 생명선을 우리 스스로 자르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이씨는 7월21일 경기도 용인에서 일어난 산사태로 50여명이 사망·실종된 것이 골프장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달 중순께 「골프장추방 범산악인 1일 단식궐기대회」를 알리는 안내문을 주위 산악인들에게 돌리고 자발적 참여를 호소했다.
이씨가 단식을 시작한 경기도 가평군 운악산(해발 9백35m)은 조수보호구역일뿐 아니라 산자락을 적시는 조종천일대는 산천어와 반딧불이 서식하고 자연경관도 빼어난 곳.
이곳의 동북쪽기슭 50여만평에 조성될 골프장은 S관광이 지난해 1월 건설허가를 받아 아직 착공하지는 않았으나 주민들은 폭약·농약의 피해를 잘 알기 때문에 골프장건설 반대 주민대책위를 만들어 서명운동 등 줄기찬 저지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번 단식에는 부산 금정산 골프장건설을 저지시킨 「범시민금정산보존회」 김억석회장(70) 가평군 하면 현리 골프장반대위원회 박용진 위원장(34)·용인군 원삼면 죽릉리 새마을 지도자 박항순씨(34)등 4명도 동참,▲전국에 건설중인 골프장공사 전면중지 ▲환경영향평가의 정확한 시행 ▲용인산사태의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고 있다.<가평=정형모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