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폭로 코미디로 망신당한 한나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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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나라당 꼴이 우습게 됐다. 박근혜 전 대표의 법률특보였던 정인봉 변호사의 폭로가 이미 알려진 내용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X파일'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요란을 떤 결과로는 너무 허망하다. 유권자들만 우롱당한 꼴이다.

지난 8일 정 변호사가 폭로를 예고한 뒤 온갖 소문이 다 나돌았다. 여자 문제라느니, 재산.출생 문제라느니…. 어느 것이나 다 과거에 한 번씩 거론됐다 사라진 내용들이지만 같은 당 당직자가 꺼낸 말이기에 뭔가 파괴적인 증거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재판을 통해 걸러진 내용이라면 그런 정치쇼를 벌여 국민의 관심을 그러모을 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같은 정당에 몸을 담고 있는 동지가 할 일은 아니다.

그는 어제도 과거 강삼재 전 사무총장으로부터 들었다며 또 다른 얘기를 꺼냈지만 정작 강 전 총장은 그런 말을 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후보에게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검증해야 한다. 비리가 있다면 국민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행태를 검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과거 이 전 시장의 비서였던 김유찬씨는 이 전 시장이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종용하며 1억2500만원을 줬다고 폭로했다. 정 변호사가 밝힌 바로 그 사건과 관련해서다. 누가 봐도 두 사람이 연계돼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김씨의 증언이 사실인지 여부는 검증해야겠지만 이런 식으로 가서는 진실은 사라지고 후보들만 흠집이 날 뿐이다.

사태를 이렇게 악화시킨 것은 당 지도부다. 정 변호사나 김씨의 폭로설은 7일 이전에 당내에 퍼져 있었다. 그때부터 중앙당이 적극적으로 나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력 후보 사이에 끼여 눈치만 보며 사태를 방치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앞으로 이런 일은 수없이 반복될 수 있다. 선거일이 가까울수록 후보 간 신경전도 더 날카로워지고, 무모한 충성분자의 돌출행동도 있을 수 있다. 그럴수록 중앙당이 중심을 잡고 관리하지 않으면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전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