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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분규 “0”를 지속하려면(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올들어 지난 4일까지의 노사분규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발생건수에 있어서 30%가 줄어들었고 분규형태에 있어서도 비합법적 쟁의율과 시위·농성건수가 각각 19.1,4.7%포인트 줄어든 양상을 보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지난 4일은 6·29이후 처음으로 분규없는 날이 되기도 했다.
노동부는 이같은 변화가 노사양측의 협상기법의 성숙,무역적자와 경기부진 등으로 인해 파업이나 분규를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된데 힘입은 것으로 분석하고 내년에는 이런 양상이 정착될 것이란 낙관적 전망도 내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노동당국의 이러한 분석도 빗나간 것은 아닐 것이다. 87년 이래의 극한적인 노사대립을 통해 노사 양쪽이 모두 그의 폐해와 불합리성을 인식하게 된 것도 사실일 것이며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도 지난달 보다는 높아졌을 것이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마찰은 가능한한 줄이고 실익을 얻는 해결방법을 선호하는 쪽으로 노사가 옮겨간 것이 분명하다할 것이다.
또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건간에 현상적으로 경쟁력 약화에 따른 수출부진으로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그에 따라 전반적으로 경기가 부진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선 사람들이 보수적·안정추구적 심리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변화의 원인이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당국의 힘에 의한 강한 제재로 인한 위축과 보신적 이기주의,명목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물가가 뛰고 보면 실질적인 소득향상이 되지 않는 것을 깨달은데서 비롯된 허무주의도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는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본다. 내년엔 이런 양상이 정착되리라는 전망도 자니치게 안이한 낙관이라고 생각한다. 분규의 요인은 해소된 것이 아니라 억제돼 잠재돼 있는 상태라고 보는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문제의 열쇠는 우선은 물가에 달려 있다. 물가가 안정되어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이 감소되지 않는다면 최근의 경향은 더욱 확산돼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물가가 억제되지 못하면 최근의 불안한 안정은 언제라도 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근로자들이 욕구를 자제해도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라는 인식마저 갖게 된다면 그 반발의 힘은 과거보다 오히려 더 커질 것이고 요구는 더 근본적이 될 위험성이 있다.
안이한 낙관에 머무를 때가 아니다. 정부는 물가를 강력히 억제하면서 근로자를 위한 각종 복지시책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경영내용을 더 상세히 공개해 일체감을 높이면서도 임금외 근무조건의 향상에 노력해 근로의욕을 북돋워 나가야 한다.
노사관계가 협상기법의 향상이나 사회분위기에 의해 장기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최근 노조운동이 정치투쟁에서 경제적 조합주의로 전환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 안도만 할 일도 아니다. 정치적으로도 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통로와 수단을 마련해 주는 것이 산업현장에서의 정치투쟁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이다. 최근의 노사관계 양상은 계기로서는 대단히 좋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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