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운스님 '달마산책'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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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길에서 길을 찾고 집에서 집을 구하기 그 얼마였던가/나아가려 하면 할수록 길은 멀어지고/나와 함께 사람들의 심성은 쪼들어만 가니/그러한 까닭에 오늘 스스로 자화를 그려내/마음 등불을 밝힐까 하노라."

지난해 일산에 정광사를 차린 제운 스님의 '자화(自畵)'라는 시의 전문이다. 길에서 길을 묻고, 집에서 집을 찾는 우리들 인간상이 정갈하게 표현됐다. 1972년 해운사로 출가해 그간 젊은이.재소자 등을 상대로 한 포교에 열심이었던 제운 스님은 한국 불교계에서 달마 그림으로 유명하다. 지난 20여년간 자기 수행의 일환으로 달마 그림을 그려왔다. 자신의 본체, 즉 자성(自性)을 찾는 방편으로 그림을 택한 것이다.

제운 스님이 그간 틈틈이 쓴 선시(禪詩)와 달마 선화(禪畵)를 함께 묶어 '달마 산책'(고요아침刊)을 냈다. 명징한 언어와 담백한 그림을 통해 구도자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선(禪)을 구체화한 수행자의 모습을 달마에서 발견한 것이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게 수행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스님은 일상사를 주목한다. 팔만대장경이 마음 심(心)자 하나로 돌아가듯 수행도 일상 자체인 것이다. "배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라"고 했던 고려 시대 태고 스님이나 봄철이 되면 허리를 쳐들고 일터로 나가는 농부나 같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나는 그림을 그린다. 시를 쓴다. 그것이 때론 마음이 되기도 하고 진여(眞如)나 불성(佛性)으로 돌아간다. 그 무엇이든 달을 볼 수 있도록 손가락을 가리키는 것쯤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한다.

스님의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는 것은 이젠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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