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착각」속에 사는 한국인들/로이터통신 「한국 과소비병」특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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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돈쓰는 재미에 흑자서 적자로/구인광고에도 「잔업없음」 필수
한때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던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제는 여가를 즐기는 경향이 늘고 있다. 노동부가 조사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이 최근 몇년새 꾸준히 줄고 있고 특히 2차산업 종사자들 구인광고에는 「잔업 없음」이 필수적인 문구로 등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비수준도 급격히 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국내외에서는 『한국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것 아니냐』는 우려와 조롱이 일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노동자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저가품생산에 매달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세태긍정론이 주장되기도 한다. 로이터 통신은 서울발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근로의식과 소비생활을 비판적으로 보는 기사를 전세계에 발송했다.<편집자주>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러시아워를 보면 한국 사람들이 이제 덜 일하고 더 논다는 소문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통계수치들은 한국의 조직화된 노동력이 컨베이어 벨트가 작동하는 생산현장을 집단적으로 떠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홍콩과 대만에서는 근로자들이 1주일에 평균 48시간 일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전체 산업평균 근로자들의 주당 근로시간은 지난 88년의 51.1시간에서 올 1·4분기(1∼3월)중에는 46.3시간으로 줄었다고 한국 노동부가 발표했다.
노동부는 이 수치를 미국의 주당 40시간 노동과 일본의 주당 46시간 노동에 비교하면서 그러나 일본 근로자의 경우 실제로는 40% 이상이 1주일에 49시간 일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더군다나 작년에 개정 공포된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종업원 3백명 이상 기업체의 경우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선을 44시간으로 설정했다. 또한 정부의 정책입안가들은 근로자들에게 토요일 대체 휴가를 주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경제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으며 일하기 싫어하는 근로자들로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의 한 기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선진 외국의 젊은이처럼 여가를 즐길때가 아니다』고 강조하기도 했지만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같은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의 근로자들이 손에 때를 묻히지 않는 사무직으로 몰리는 바람에 기능인력이 크게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난한 아시아국가들의 노동자들이 한국에 불법취업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것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일하기를 꺼려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돈을 쓰는데 재미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현재 약 5천5백달러 수준인데 자동차등 소비재의 수요과 해외여행이 급증하고 있으며 한국인들은 술과 오락에 돈을 낭비하고 있다.
새 차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수요가 많은 대중차의 경우 출고되기까지 두달을 기다려야 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으며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인들은 지난해 3억4백만병의 맥주를 마셨다. 또한 미군부대나 세관을 통해 밀수입된 외제 소비재가 급증,한국 정부는 대대적인 밀수근절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88년 해외여행 규제 조치가 풀리면서 해외여행이 폭발적으로 증가,88년 해외여행자 수는 75만명,지난해에는 1백60만명에 이르렀다.
한국의 올해 무역적자는 8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원식 국무총리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은 근검절약과 근면정신으로 되돌아갈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최각규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저임금 근로자들이 그들이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저가품을 생산하는 노동에 바치는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비숙련 노동이 필요한 기업들은 근로환경을 개선,주부와 노인등 유휴노동력을 이용하라고 촉구하고 있다.<서울 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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