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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스리랑카 부처님 숨결 흐르는 "홍차의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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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스리랑카는 인도의 한부분인 섬, 혹은 힌두교를 믿지않는 인도인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스리랑카는 인도와는 아주 다른 별개의 나라다.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징을 지닌 전통적인 불교국가이며 많은 한국의 불교도들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를 하는 나라다.
일찍이 마르코폴로는 항해중에 안다해의 마지막 지점인 이섬에 들렀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972년까지 스리랑카는 실론으로 불리다가 스리랑카로 개명해 오늘에 이르렀다.
남한 면적 약3분의2 정도되는 7만여 평방km의 국토에서 1천5백여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이곳의 주민은 대부분 기원전 5∼6세기경에 이주한 싱할리스족과 스리랑카 북부지방에 자치구 비슷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타밀족으로 구성돼 두민족간의 분쟁은 이따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스리랑카는 비교적 작은 나라에 속한다. 언뜻보면 인도에서 한방울의 물이 떨어진 것같은 물방울 모양의 이 나라는 남북으로 약3백5O여km, 동서로 약2백여km 정도된다.
누와라 엘리야 지방의 2천5백여m나 되는 고산지대가 섬중앙에 자리잡아 열대지방에 속하지만 시원한 고원을 형성하고 있다.

<국민70%가 불교도>
수도 콜롬보는 동서양의 교통을 잇는 교통축으로 일찍부터 각국의 항공기가 취항하고 있는 국제 도시. 국내항공도 중동붐이 한창인 1970년대부터 이미 콜롬보를 중간기착지로 정하고 있다.
콜롬보에 도착하면 나그네들은 대부분 정신적으로 안정된다고 한다. 부처님의 나라이기도 해서 그렇지만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표정에서 악이라고는 전혀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옷차림과 맨발로 걷는 점잖은 신사의 기품에서 이나라가 아직도 격동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변화를 거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한다.
콜롬보는 이러한 고루한 시각을 떨쳐버리게 하는 또다른 현대적 요소들도 갖추고 있다. 콜롬보는그리 크지도, 혼잡스럽지도 않지만 대규모의 국제적인 체인을 가진 호텔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이 나라도 역시 현대문명을 받아들이고 줄기찬 발전을 추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불교는 이나라 주민의 7O%가 믿는 국민적 종교로 오랜동안 국민들의 정신생활이나 문화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그러기에 스리랑카 국민들은 불교를 종교로 간주하기 보다는 도덕의 척도나 철학적 사고의 기준으로 삼고있으며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캔디는 수도인 콜롬보로부터 동쪽으로 약 1백15km 떨어진 이나라 고원지방을 대표하는 제2의 도시. 스리랑카의 문학중심지이며 과거에는 싱할리스 민족이 세웠던 왕국의 수도 였었고 현재는 이 나라 정신적 구심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고도다.

<호수와 잘 어우러져>
캔디는 높은 산과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도시의 한쪽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져있다. 그리고 호수 주변에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자못 로맨틱한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불치사는 이런 주변의 경관과 아주 잘 어울리게 호숫가에 자리잡았는데 밤이면 대낮같이 조명등이 켜지고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불치사에 안치된 부처님의 치아를 보려고 이곳을 찾는다. 한국에서도 많은 불교신도들이 이곳을 방문하는데 사원안이 비교적 넓고 또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처리하느라고 내부를 잘 정리해놓은 것이 이색적이었다.
불치사안에 들어가게 되면 달마대사 비슷한 스님을 만나게된다. 달마대사와 비슷하다 싶어 말을 걸어보고 달마에 대해 물어보면 정작 이 스님들은 달마에 대해서 하나같이 아무것도 모른다. 공부를 안해서 그런지 혹은 달마대사가 그리 유명하지 않아서 그런지-.
저녁이면 불치사 주변은 대낮같이 밝은 조명으로 사원 안팎을 밝힌다. 마치 부처님이 이세상에 왕림하여 자비로 세상을 밝힌 것처럼-.
그리고 부처님의 치아를 보겠다고(정확히 말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으러) 전세계에서 모인 많은 불교도들과 관광객들이 저녁을 먹은후 이곳 불치사로 모인다. 그래서 이곳 불치사 주변은 늘 관광버스로 초만원을 이룬다.
스리랑카는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하려는 후진국이다. 오랜동안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등의 식민지로 살아오다 1948년에야 비로소 독립했다.
그들은 일찍부터 이곳에 차밭을 개발해 홍차를 가꾸었으며 현재도 세계 홍차 시장의 절반을 독점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립톤등은 이곳 홍차에 브랜드만 붙인것으로 세계적인 홍차의 대명사다.
홍차의 생육조건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곳 스리랑카의 누와라 엘리야가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자란 홍차를 세계적인 명차의 으뜸으로 치고 있다.
이곳은 해발2,500m의 고산지대로서 평균기온이 섭씨15도로 유럽의 봄날씨와 거의 흡사한 서늘한 날씨가 계속되다. 정상을 오르는 도중의 비경은 길이 1백m 이상의 크고 작은 폭포가 2백여개가 있고, 버스는 구름을 벗어나 구름위를 달린다.
구름 사이로 홍차를 따서 메고 내려오는 여성들의 모습 또한 이곳에서만 볼수있는 이색적인 광경이 아닌가 싶다.
스리랑카의 차생산은 아직도 상상할수 없을 정도의 낮은 저임금으로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며 이곳의 많은 아낙네들이 머리에 수건을 둘러매고 차 채집을 하고 있다.
스리탕카는 아직도 공산품이 부족하다. 아니 부족하다기보다는 이제 겨우 문화생활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 같다. 거리에 나가거나 관광지를 가게되면 많은 스리랑카의 어린이들이 볼펜을 달라고 모여든다.
마치 우리가 전쟁 직후에 미군들에게 초컬릿을 달라고 조르던것 처럼-. 그래서 스리랑카를 방문하게 되면 이들에게 줄 선물로 사무용 볼펜을 많이 가져가면 좋을것 같다.
시기리야로 가면 비교적 평평한 들판에 우뚝 솟은 그저 평범할 것 같은 바위 둥치를 만나게 된다. 이름이 바위 둥치이지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이곳을 스리랑카에서는 2대주요 관광지로 꼽고 있는데 올라보면 그럴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올라가는데 3시간>
시기리야 록은 기원전 5세기경 거대한 바위위에 세워진 하나의 요새인데 밑에서부터 2백여m 암벽를 타고 오른 급수시설및 주거시설이 도무지 상상이 안갈 정도로 정교하며 적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방공시설도 너무나 잘 돼있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해 쉽게 오르도록 쇠로 난간을 해놓았는데 이것을 잡고 올라가는것도 수월치 않아 아찔하기조차 하다. 그 옛날 사람들이 도무지 어떤 방법으로 이곳에 요새를 만들고 살았는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어렵사리 안내원의 손을 잡고 2∼3시간에 걸친 사투끝에 정상에 올라가면 약7천여평 됨직한 넓은 터를 만난다. 이곳에는 스리랑카에서 흔히 나는 붉은 벽돌로 된 고대 왕궁터가 있고 수영장·연회당·우물·왕의 집무실·전망대·회의실등이 갖추어져 있다.
특히 우물은 멀러 3∼4km떨어진 곳에서 정교한 바위선을 따라 물을 조달한 흔적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상수시설일 성싶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숲은 1천5백여년의 역사를 간직한채 무심한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정상에서 내려오자 다시 이곳 주변의 소년들이 볼펜을 달라고 외치며 따라붙는다.
-부처님이시여!
이 작은 나라의 과거는 짓밟히고 침략당했지만 이제 세계는 평화의 무드에 젖어 서로가 잘살려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스리랑카도 세계 국가의일원으로 당당히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삶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착하고 자비롭게 살려는 이들에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내려주십시오-.
김호진<투어타임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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