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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 김기옥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김기옥씨(52)는 서울구치소(소장송주섭·경기도의왕시포일동산18의1)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교도관의 한사람이다.
국가 공안직공무원인 그의 현직위는 8급 교사.
67년 부천교도소(현 영등포교도소의 전신)에서 처음으로 재소자들과 인연을 맺은 김씨는 24년동안을 오직 우리 사회의 음지만을 지켜온, 자신이야 뭐라고하든 불행한(?) 사람이다.
법집행의 공정성을 논하기 이전에 교도소에 들어 온 사람치고 심사가 뒤틀려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24시간중 절반을 바로 그런 사람들과 마주하며 살아야하는 그것 또한 밝은 정서를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재소자들과 생활을 함께 하는 교도관들에게는 일정한 사회적 통념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때로는 편견일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교도관이라는 직업군에 대해 불가피 갖게되는 집단 이미지는 결코 밝지못한게 사실이다.
김씨도 역시 이같은 집단이미지에서 벗어날수 없는 교도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진흙속에서도 연꽃은 핀다고 했던가.
김씨는 우리사회가 스스로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격리시켜 놓은 재소자들에게서 인간의 본성을 발견하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전개했다.
『비록 일시적인 잘못으로 구치소에 들어왔지만 재소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남의 탓으로 몰아붙이려는 자세가 문제일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뉘우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기를 수년여.
86년 여름 김씨는 마침내 여름휴가를 이용, 모종의 집필작업에 착수했다. 제목은 『나를 다스리는 법』.
「나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내 스스로가 짓는 것, 결코 남의탓이 아니다」를 시작으로 모두 여덟 구절로 된 이 글은 김씨가 동서양 성현들의 가르침을 특정종교에 치우치지 않게 종합·정리한 것이다.
김씨 자신이야 독실한 불교신자이지만 글의 내용에서는 최대한 불교적인 표현은 배제시켰다.
문안을 최종 완성하기까지 김씨는 종교인이나 교수들을 찾아가 수차례에 걸친 자문을 구해야했다.
진통끝에 이 글을 완성한 김씨는 법무부에 이를 정식으로 보고하기에 이르렀고 검토를 끝낸 법무부측은 김씨의 이 글을 전국 재소자 교화용 교재로 정식채택하게 됐다.
김씨가 사비를 털어 이문안을 주민등록증 크기의 카드에 담아 재소자들에게 배포한지 얼마후의 일이었다.
법무부장관 표창(79, 79년)과 교정국장표창(91년) 등을 받은 바있는 김씨는 평소 재소자들과의대화를 통해 서로 넘을수없는 두꺼운 벽이 있음을 알고부터 그 장벽을 허무는데 혼신의 정력을 기울였다.
▲나보다 남을 위하는 일로 복을 짓고 겸손한 마음으로 덕을 쌓아라 ▲모든 죄악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 늘 참고 적은 것으로 만족하라▲웃는 얼굴 부드럽고 진실된 말로남을 대하고 모든 일은 순리에 따르라.
▲나의 바른 삶이 나라 위한 길임을 깊이 새길 것이며 나를 아끼듯 부모를 섬겨라 ▲웃어른을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람할 것이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정을 베풀어라 ▲내가 지은 모든선악의 결과는 반드시 내가 받게되는 것, 순간순간을 후회없이 살아라 ▲청소년들이여, 나는 나의 조국과 부모, 그리고 자신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라.
전국교도소에 자신의 글을 보급시키는데 성공한 김씨는 88년5월 서울명성여중고등 4개교와 2군사령부등 군부대에 약 20만부의 이 수신카드를 사비로 제작, 보급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사단장의 경우에는 한쪽면에 무궁화그림이 들어있는 이 카드를 사단 전장병들에게 지급해 주기도 했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 카드를 다량으로 가져가겠다며 내가 출근할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하는 김씨는 『그럴 때 가장 큰보람을 느낀다』며 겸손한 표정을 지었다.
김씨가 서울구치소내 교도관등을 중심으로 서울불심회를 조직, 회장직을 맡기 시작한 것은 87년6월.
「교도관 스스로의 수행은 물론, 이를 실천함으로써 재소자교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창립된 서울불심회는 현재 80여명의 회원들이 매달 일정액의 회비를 내 내운영되고 있다.
이들 불심회활동의 대부분도 재소자교화를 위한 각종 법회나 가정방문등에 국한돼 있다. 사형수들의 가정을 방문, 가족의 생계를 지원해주는 일도 그중 하나다.
부인 오인순씨(52)와의 사이에 외아들 유택(20)씨를 두고 있는 김씨는 자신의 이같은 봉사활동이 부인 오씨의 배려와 결코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평소 술·담배를 일절 하지않는 김씨는 자신이 6남매중 3남임에도 불구하고 90세를 바라보는 노모(오판임씨·87)를 직접모시고 있다. 이 또한 부인 오씨의 적극적인 배려덕분이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6·25때 일찍이 홀로되신 노모와 잠자리를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크게 마음아파하기도 했다.
재소자 본인보다는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선행돼야 한다고 믿고있는 그는 89년3월 「백양자비장학회」를 결성, 91년6월 현재 전국의1백70여 재소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장학회창립때는 백양자비원(압구정동) 석하담스님의 공로가 컸다.
이서옹전조계종종정을 비롯한 임원진들의 성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장학회에 최근 익명을 요구하는 한 유력 기업인이 스스로 스폰서를 자처하고 나서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자신의 이처럼 다양한 봉사활동을 『지극히 당연한 임무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는 김씨는 현재 구치소내에서 가강「노른자위」라는 재소자 작품전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8급 교도관신분으로 그토록 분주한 자선교도행정을 벌이고 있는 김씨에게 송왕섭소장이 더욱 열심히 봉사활동에 매진하라는 뜻에서 특별한 배려를 해준것이다.
김씨 자신도 송소장의 이같은 배려에 크게 감동, 『재소자교화에 분골쇄신하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다짐하고 있다. <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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