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7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중앙일보

입력

좀처럼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박찬호의 막차가 왔습니다. 뉴욕 메츠입니다.

이 겨울 다른 선수들이 대합실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언 손을 비비며 기다리던 대가는 초라했습니다. 연봉 60만 달러. 지난해까지 챙겼던 몫의 1%도 채 안됩니다.

수많은 한국 기자들이 수억 달러가 춤추는 풍년 들녘의 구석진 응달에서 꽹과리를 두들기고 추임새를 넣으며 성원(?)을 보냈건만 전대를 찬 상인의 생각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코리안 특급의 막차 계약을 통해서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진리는 '부상과 먹튀'의 과거는 결코 시장에서 용납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는 무시무시한 메이저리그 자본의 연좌제입니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요. 본래 '돈 놓고 돈 먹는' 세계가 아닙니까. 달리 자본주의의 총아들입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가차없이 내뱉어버리는 냉혹한 시장이 아니었던가요. 타구(唾具)의 신세를 면한 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박찬호도 그동안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던 듯합니다. 구체적인 연봉 조건을 밝히고 난 다음 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무심지도'란 제목의 글을 올려 놓았습니다.

"마음을 비우니 길이 보인다. 얼마 전 명상 속에 갑자기 떠오른 말입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욕심을 안낸다고 하나 온통 욕심과 집착 속에 갇혀 있는 나를 봅니다. 자존심을 내지 말자는 나와의 약속에서 평범함이라는 화두를 만들었지만 그리 현실을 알고 진정한 내 길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전날 기자회견에선 걱정과 달리 밝은 표정으로 강한 자신감을 보여줬습니다.

"금전적으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편하게 할 수 있느냐가 우선이었다"면서 "20승은 자신이 없어도 199이닝(그렇게 던져야 옵션으로 걸린 240만 달러를 모두 받을 수 있습니다)은 해볼만 하다"고 말했습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던가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날개의 요체가 과연 무엇이냐는 점입니다. 구름 위로 타고 다니는 것인가 급전직하해 산산이 부서지고 난 뒤에도 다시 대지를 박차고 오르는 재비상의 날개인가.

그동안 지독한 콤플렉스라도 있는 사람처럼 늘 선문답을 즐기고 이번에도 어렵게 '무심지도'란 말을 꺼내 애써 강조한 그이기에 반문하는 것입니다.

더욱 재비상의 날개는 결코 무심지도란 말로써 끝날 일도 아니고 관념의 테두리에서 맴도는 날개 짓은 더더욱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요즘 한국 연예가에서는 꽃다운 나이의 새들이 스스로 날개를 꺾고 주검의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습니다. 우울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는 추락의 끔찍한 결말입니다.

정녕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다면 박찬호가 그것을 오롯이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관념이 아닌 온 몸으로 꿈 속의 화두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로 속 시원하게 말입니다.

구자겸 USA 중앙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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