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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도로 성사" … 합의문 읽자 기립 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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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3일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폐막식에 앞서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합의문 타결을 자축하듯 손을 맞잡았다.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국장,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수석대표로 참가했다. [연합뉴스]

13일 오후 5시50분쯤 6자회담장인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기립 박수가 터져나왔다.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6개국 대표단 앞에서 합의문을 5분 만에 읽어 내려간 직후였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지 17개월 만에, 2006년 10.9 북한 핵실험 뒤 넉 달 만에 한반도의 '핵시계'를 일단 정지시킨 순간이었다.

합의문은 간단했지만 이르는 과정은 험난했다. 6개국 대표단은 회담 6일째인 이날 새벽 3시30분까지 11시간 동안 막판 담판을 벌였다. 결렬의 문턱을 수차례 오가는 피말리는 협상이었다.

마라톤 협상은 한국 대표단의 주도로 이뤄졌다고 한다.

북한의 중유 200만~300만t 요구에 합의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중국과 미국이 협상 주도권을 한국에 넘긴 것이었다. 미국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협상 직전까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며 협상 결렬도 받아들일 태세를 보였고, 북한도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평양행 비행기를 타겠다며 맞불을 놓고 있었다.

한국 대표단은 합의문 초안을 새로 만들었다. 중유 100만t 규모의 대북 지원책으로 북한을 협상장에 붙들어 뒀다. 다른 나라들에게는 중유 대신 전력이나 식량 등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유인책을 제시했다. 북한의 핵시설 폐쇄 수준과 속도에 따라 에너지 지원량과 지원 속도가 정해지는 '성과급' 방식의 아이디어를 낸 것이었다. '계약금'조의 최초 중유 5만t은 한국이 내겠다는 제안까지 곁들였다. 이는 한국 대표단이 준비해 놓은 세 가지 복안 중 하나였다.

한국은 먼저 중국.미국.러시아의 합의를 차례로 받아냈다.

그러나 일본은 거부했다. 북한이 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아 일절 지원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본 대표단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협상의 중대 고비였다.

한국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일본을 제외한 한.미.중.러 4개국이 동의한 합의문을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제시했다.

김 부상은 즉답을 피했다. 그러자 우다웨이 부부장이 북.미 협상을 주선했다. 긴급 북.중 협의도 이뤄졌다. 천 본부장도 가세해 김 부상에게 '마지막 기회'임을 강조했다. 자정 무렵 김 부상은 합의 의사를 밝혔다. 합의 문안 조정 작업만 남게 된 것이었다.

긴장은 13일 낮에도 이어졌다. 북한 당국의 승인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수석대표회의에서 북한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모든 절차가 끝난 것이었다.

한국 대표단 관계자는 "대북 지원에 대한 회담 참가국의 균등분담 원칙을 관철시키는 데 가장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한국이 부담을 떠맡을 경우 협상가로서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생각에 어떤 형태로든 분담 원칙을 합의문에 포함시키고 돌아가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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