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정치(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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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윈스턴 처칠경은 피카소를 놀라게 한 화가였다. 피카소는 처칠의 그림을 보고 『그가 직업화가라면 상당히 좋은 생활을 할 수가 있었을텐데』라고 했다.
그가 그림을 시작한 것은 40세가 넘어서였다. 해군장관직에서 물러나 칩거하고 있을때 부인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여행할때면 언제나 그림 도구를 가지고 다녔다. 총리로 재직중이던 1953년에는 런던 국립전람회에서 1등 입선을 했다.
그가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뿌리치고 피라미드를 그리겠다고 낙타에 그림 도구를 싣고 나섰다. 낙타가 뒷발질을 하는 바람에 등위에 타고 있던 처칠은 거꾸로 사막 모래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가지고 간 그림물감이 엎어져 얼굴이 총천연색이 됐다.
이 일화는 오늘의 유럽 화단에서도 재미있는 웃음거리로 널리 이야기 되고 있다. 처칠은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뛰어나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세계사속의 내로라 하는 정치인들이 보여준 문예의 재능은 수없이 많다. 지난 78년 히드 전영국 총리가 친선 방문차 서울에 왔을때의 일이다. 그는 공항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직행,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으로 「멘델스존 소나타2번」을 연주해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그의 연주는 전혀 예기치않은 예외의 스케줄로 부랴부랴 이뤄진 것이었다. 히드는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해 총리퇴임후 관현악단을 지휘하기도 했고 음악저서를 내기도 했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예부터 시와 음악,그림 등 예술이 깃들인 정치가 바로 통치의 이상이다. 동양에서는 특히 시를 인격과 교양의 가늠자로 삼기도 했다.
최근 문학지가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애송시 특집을 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육사의 「청포도」를,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황해도 민요 「왱왱찌쿵찌쿵」을 각각 가장 좋아한다고.
지진아 신세를 못면하고 있는 찌든 정치여. 행여나 당신네들이 좋아하는 맑고 매끄러운 시어들 같은 정치의 전설들이 현실속에서도 주절이 주절이 열리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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