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테 홍 '46년 한 풀기' 물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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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남편 홍옥근씨와의 상봉을 기다리고 있는 레나테 홍(中)과 큰아들 페터 현철(右), 둘째 아들 우베. 남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한 홍 할머니는 11일 "가슴이 떨리고 너무 기쁘다"고 울먹였다. 그는 당장 상봉이 어렵다면 편지라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베를린=유권하 특파원]

레나테 홍 할머니의 남편 홍옥근씨의 생존 사실이 확인된 것은 독일 정부와 적십자사가 합심해 노력한 결실이다. 이 과정에서 대한적십자사가 길잡이 역할을 했다.

◆본지 보도가 도화선=지난해 11월 14일자 본지 보도로 레나테 홍 할머니의 사연이 전해지자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독일적십자사에 홍씨 가족의 상봉을 위해 협조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홍옥근씨 찾기에 첫 시동을 건 것이다. 이에 루돌프 자이터스 독일 적십자사 총재는 직원 두 명을 북한에 파견하고, 방북 결과와 모든 관련 정보를 한 총재에게 전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에게도 홍 할머니와 관련해 도움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본지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 한국과 독일 주요 언론의 대대적 보도도 촉매제가 됐다.

홍씨 부부와 두 아들의 조속한 상봉을 위해 모든 관계 기관이 앞장서 줄 것을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쳤다.

◆독일 정부 적극적인 움직임=평소 해외의 인권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온 독일 외무부도 이를 의식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서울과 평양주재 독일 대사관은 관련 정보를 공유해 가며 적십자사와 별도의 채널을 가동해 홍씨의 소재를 찾는 작업을 해왔다. 특히 홍씨가 거주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함흥 지역 출신 인사들과 접촉해 홍옥근씨가 살아있는지를 수소문해 왔다. 독일통으로 알려진 홍창일 베를린 주재 북한대사를 통해서도 홍씨 찾기에 협조를 구하며 북한당국을 설득해 왔다.

북한은 서방국가 중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독일의 부탁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독일은 쇠고기 지원을 비롯해 최근까지 인도적인 측면에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가장 많이 지원해 왔다.

베를린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그동안 홍씨의 경우처럼 동독 여성과 결혼했던 북한 주민에 관한 생사확인 부탁을 받게 되면 사망했다고 통보해 주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며 "그러나 이번엔 독일 정부의 요청이 있어 적당히 얼버무릴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가족 상봉하려면 국제적 압력이 필요=생존이 확인이 됐다고 해서 홍 할머니의 꿈이 쉽사리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독일 정부와 적십자사는 북한을 계속 설득해 홍씨 부부의 상봉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북한 측은 가족 상봉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측이 항상 대가를 요구하던 관례를 감안해 볼 때 독일 측이 어떤 보상을 해줄 것인지도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의 한 외교 전문가는 "북한은 일단 시간을 벌면서 상황에 따라 홍옥근씨 근황 소개→편지 교류 허가→상봉 등의 순차적인 단계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인도주의적인 상봉을 요구하는 국제여론의 압박이 거세질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미 홍 할머니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표시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내외 유력인사와 인권단체들의 눈길이 북한 측 반응에 쏠리고 있다. 북한의 대외관계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6자회담이 순조롭게 풀리고 북한의 경직된 태도가 조금 누그러지면 홍씨 가족의 극적인 상봉도 점쳐볼 수 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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