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시설 '폐쇄'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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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이 부화하기 전까진 병아리를 세지 말라-. 북핵 6자회담의 앞날을 얘기하는 데 딱 들어맞는 말이다.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미국 측 대표가 회의를 마치고 12일 새벽 숙소인 세인트 레지스 호텔로 들어오다 취재진의 마이크에 둘러싸였다. 힐 대표는 "오늘이 회담 마지막 날"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연합뉴스]

베이징(北京) 6자회담에서 진통 끝에 북한 핵 시설 '폐쇄'가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12일 "밤 늦게 막판 타협이 이뤄졌다"며 "의장국인 중국이 회담 시작 때 제시한 합의문 초안의 문구 수정작업이 6개국 수석대표가 모인 가운데 밤 늦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북한 핵 시설의 폐쇄와 대북 에너지 지원이 합의됐다는 의미다. 의장국인 중국은 13일 회담 참가국 전체회의를 거쳐 합의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북한이 합의문에 서명하면 북한 핵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남북, 북.미 관계 개선과 더불어 국내 정치 환경의 변화도 예상된다.

남북한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는 이날 북한에 지원할 중유의 양 등 핵심 쟁점을 둘러싼 이견으로 밤 늦게까지 협상을 벌였다. 북한 핵 시설의 폐쇄 수준에 대한 의견 차도 좁혀지지 않아 한때 협상 결렬이 전망되기도 했었다.

6개국이 합의한 내용은 ▶60일 내에 북한 핵 시설 폐쇄(shut down) ▶핵 시설 폐쇄와 동시에 중유 등의 에너지 지원 ▶북.미 관계 정상화 협상팀 등 5개 실무협상팀 구성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핵 시설 폐쇄의 수준이 동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단순한 폐쇄'인지, 미국이 제안한 '영구적 폐쇄'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영구적 폐쇄는 원자로 핵심 장치의 기능을 제거하는 '불능화(disabling)' 조치를 포함한 것이다.

북한에 제공되는 중유의 양도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은 당초 200만t 이상의 중유를 요구했으나 협상 과정에서 요구량을 크게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에너지 지원은 중유와 전력의 혼합 형태로 합의된 것으로 보이며, 향후 실무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지원 방법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상언 기자

◆핵시설 폐쇄=핵시설은 북한 영변에 있는 5㎿ 원자로 등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시설을 말한다. '폐쇄'는 이 시설의 가동을 중단한다는 뜻이다. 언제라도 재가동할 수 있는 '동결'보다 강한 개념이다. 동결이 접근과 수리를 허용한다면 폐쇄는 그것을 불허하는 개념이다. 폐쇄보다 더 강한 것으로 '불능화'란 말이 있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북한 측에 요구한 것이다. 접근과 수리를 불허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핵심 부품을 뜯어내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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