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종결 선언 의무화 안 지키면 주최자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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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2일. 서울 등 전국의 대도시에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허가를 받은 합법 집회였다. 주최 측인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집회가 끝난 뒤에도 참가자를 해산시키는 '종결 선언'을 하지 않았다. 이후 참가자들은 가두시위에 나서 차로를 점거했다. 당초 신고 내용과 다른 불법 행위였다. 대전에선 시위대가 충남도청 진입을 시도하면서 담장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시위로 이어졌다. 하지만 폭력시위를 기획한 혐의를 밝혀내지 않는 한 주최 측 인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법적 근거는 없는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주최 측이 불법.폭력 시위를 주동하거나 공모한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 힘들어 현행법으로는 처벌이 어렵다"고 말했다.

앞으론 집회 주최자들이 질서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하고도 집회를 끝내지 않을 경우 처벌받게 된다.

대검찰청과 경찰청은 12일 '시위 종결 선언 의무'를 위반할 경우 이를 처벌하는 조항을 담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마련,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최자들이 신고 내용대로 평화적으로 집회를 마무리하지 않아 폭력 시위로 변질되도록 방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대검 관계자는 "처벌조항을 두면 주최 측 스스로 집회를 평화적으로 끝낼 책임이 생기게 돼 불법.폭력 시위에 대한 예방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집회 때 복면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물건도 착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엔 6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현행 법에는 관련 조항이 없다. 독일은 1989년부터 복면 집회 참가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집회로 인한 소음 규제도 현재보다 강화된다. 확성기 등으로 생기는 소음을 피해 건물에서 측정하도록 한 현행법 조항을 소음 발생 장소로부터 10~15m 떨어진 곳에서 측정하도록 바꿨다. 소음 규제 기준도 주거지역.학교에선 현행 65㏈(주간).60㏈(야간) 이하에서 55㏈(주간).50㏈(야간) 이하로 각각 낮췄다. 자동차나 공장 기계 작동으로 인한 소음은 75㏈ 정도다. 이번 개정안이 적용되면 주거지 인근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집회를 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정철근.이철재 기자

◆시위 종결 선언=집시법(14조 1항)은 집회.시위의 주최자가 질서를 유지할 수 없을 땐 그 집회.시위를 끝내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고 있다. 주최 측이 집회를 신고할 때 평화적으로 마치겠다고 약속한 만큼 폭력.불법으로 변질될 경우 집회.시위를 스스로 끝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의무조항만 있고 처벌조항이 없어 그동안 실효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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