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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명절엔 역시 코미디 ? … '+α' 가 필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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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연말에도 '조폭 마누라3'은 '미녀는 괴로워'에 크게 빛을 잃었다. 한동안 흥행을 주도한 이른바 조폭 코미디에 대한 관객의 피로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설 연휴는 유난히 짧다. 흥행 대목으로 부르기에 좀 모자란 편이다. 그래도 코미디는 찾아온다. 15일 나란히 개봉하는 '1번가의 기적'(감독 윤제균)과 '복면달호'(감독 김상찬.김현수)다. 일단 조폭과는 좀 거리를 뒀다. 사정없이 웃기기보다 '코미디+α'가 포석이다.

'+ 노래' 로커 접고 트로트 가수로 … 쿵짝쿵짝

밤무대 밴드에서 일하던 로커 지망생 달호(차태현)에게 정식 데뷔 기회가 찾아온다. 밴드 멤버들을 버리고 음반업자 장 사장(임채무)을 따라나서는데, 알고 보니 트로트 전문이다. 사무실의 동료 여가수 서연(이소연)에게 연정을 품게 되면서 달호는 그럭저럭 장 사장의 주문을 따라간다. 첫 방송 출연에서 엉겁결에 뒤집어 쓴 복면이 신비주의 전략으로 해석되고, 달호는 일약 스타가 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재미는 속칭 '컨셉트'에 집약돼 있다. 우선 달호의 예명은 뽕(트로트)의 느낌(feel)을 제대로 살린다는 점에서 '봉필'이다. 트로트 가수가 된 걸 부끄러워하면서도 스타덤을 즐기는 달호의 이중성이 복면으로 상징된다.

자연히 국내 대중음악의 지형도에서 트로트의 위상이나 그 전형성을 살짝 과장하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쉽게 거둘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갈기머리였던 차태현이 반짝이 의상에 8대2 가르마로 변신하는 모습이 한 예다.

문제는 이 컨셉트를 펼쳐놓는 방식이 평이하다 못해 안일하다는 점이다. 장점으로 해석하자면 요즘 영화의 빠른 전개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손쉽게 영화를 따라갈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컨셉트를 빼고 나면 높이 평가할 점이 드물다는 얘기다.

다른 영화와 자연스레 비교가 될 것 같다. 복면에 얼굴을 감춘 달호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결말은 '미녀는 괴로워'에서 한나가 성형사실을 고백하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김아중의 '마리아'처럼 차태현의 '이차선 다리'도 거듭 흘러나온다.

성형 면죄부로 비난받을 법했던 '미녀는 괴로워'가 상업영화로서 퍽 영리한 만듦새를 보여준 반면 '복면달호'가 트로트 음악의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지극히 단조롭다. 그 진정성을 충족하려면 노래 못하는 서연이 굳이 트로트 가수를 하겠다는 이유도, 서연을 통해 달호가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도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려졌어야 했다. 원작은 일본에서 TV영화로 만들어진 '엔카의 꽃길'이다.

'+ 눈물' 철거 위기 산동네 … 웃음만 있을쏘냐

풍경은 평화로운데, 실은 철거 위기에 처한 산동네에 건달 필제(임창정)가 나타난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악의 축'으로 곧잘 등장하는 부동산 개발업자의 하수인이다.

하지만 필제는 성격이 막무가내일망정 악당이 될 만큼 모질지는 못하다. 동네 꼬마들과 부대끼면서 본업은 제대로 진행하지 못 하고, 잔정만 쌓여간다. 그 상대 중에 명란(하지원)이 있다. 동양챔피언 출신으로 병석에 누운 아버지(정두홍)를 이어 권투선수가 되겠다는 씩씩한 아가씨다.

전반부의 코미디는 부담 없이 즐길 만하다. 특히 진한 사투리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아역배우들의 연기가 깜찍하다. 임창정.하지원 콤비의 호흡이나 각각 펼치는 배설물 코미디도 큰 무리 없이 웃긴다.

산동네에 사는 게 부끄러워 거짓말을 하는 아가씨(강예원)와 우직한 성품으로 다가서는 자판기 아저씨(이훈)의 에피소드는 잔재미를 더한다.

후반부로 접어들면 신파적인 분위기가 짙어진다. 한때 충무로에 흥행 공식으로 회자하던 '웃음 다음에 눈물'이라는 코드다. 그중에도 눈물을 극대화하려는 장치로 보인다.

그 의도대로 따라가기에는 영화의 방법이 퍽 거칠다. 꼬마들을 비롯한 산동네 사람들의 순수하고 딱한 처지를 강조하면서, 산동네 바깥 사람들을 일제히 악역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묘사 역시 눈에 거슬릴 만큼 폭력적이다. 필제를 대신해 직접 나서는 실세 건달들은 물론이고 산동네 어린 남매를 괴롭히는 또래 아이들이나 시장 상인까지도 지나치게 잔인한 존재로 그려진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정도를 넘어 반감을 살 대목이 여럿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현실에서 불가능한 기적은 벌어지지 않는다. 좋게 보면, 하루하루의 일상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하는 태도다. 나쁘게 보면, 직전의 가혹한 비극에 대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한 결말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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