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행|7년 진통…연말 골격 드러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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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근로자들이 주주이면서 동시에 주 고객이 될 「노동은행」이 설립추진기관인 한국노총과 정부 관계부처간의 협의를 거쳐 차츰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7년에 걸친 노총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지난 3월 노태우 대통령이 설립가능성 검토를 지시, 5월 근로자종합복지대책의 일환으로 설립이 확정·발표된 노동은행은 현재 노총 측이 제시한 설립·운영안을 놓고 6월중 구성된 「노동은행 설립지원 추진위원회」(위원장 백원구 재무부 제2차관보)에서 손질을 하는 식으로 최종안을 만들어가고 있다.
재무부·노동부·경제기획원 등 관계부처 공무원, 노총 관계자, 학계인사 등 9명으로 짜여진 추진위는 지난 달 31일 1차 모임을 갖고 이 은행의 주주·출자지분·명칭 등에 대해 논의했다.
추진위는 9월초 2차 모임을 갖는 등 앞으로 3∼4차례 논의를 더 한 뒤 올해 말까지는 「완성된 그림」을 내놓을 예정이다.
노총측의 안은 어떤 것이며 어느 대목에 논란이 있는지 정리해 본다.
노총측안=노총이 구상하고 있는 노동은행의 골격은 납입자본금 2천억 원에 전국적인 영업망을 갖춘 시중은행으로서 근로자 저축 유치와 근로자 대출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며 산재보상기금·사내복지기금 등 근로자 관련 재원의 예치·관리를 전담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총은 9월말 설립준비회사인 (주)노동금융을 설립, 주식공모 및 금융당국으로부터의 인허가 취득 등 개점준비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납입자본금 조성비율은 ▲노총이 160억 원(8%) ▲산별 연맹 및 지역노동조직이 2백40억 원(12%)을 투자하고 ▲나머지 1천6백억 원(80%)은 노조 조합원 1천억 원, 비조합원 근로자·공무원 및 일반 국민 6백억 원으로 구분해 일반 공모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92년 9월 1일 개점 때는 납입자본금을 2천억 원으로 하되 94, 96년에 각각 1천5백억 원씩 증자, 수권자본금을 모두 5천억 원으로 늘릴 계획.
전국 영업망은 대도시 지역과 근로자가 밀집된 산업지역으로 2원화하며 산업지역의 점포는 정부 소유의 노동복지회관을 이용한다는 구상이다.
점포 수는 개점 때는 서울 5곳, 인천 2곳, 경기 3곳 등 10개로 한 뒤 92년 말까지 5개 시·도 20곳, 93년 말까지 14개 시·도 45곳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으로 되어있다.
업무영역을 보면 일반 여·수신 업무 외에 신탁·외환업무까지 맡고 특히 산재보상기금·사내복지기금·퇴직금적립기금 등 근로자 복지 관련 재원의 정책적 예치·관리업무를 전담한다는 구상이다.
1천만 근로자의 임금계좌 개설운동을 벌여 수신고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근로자들에 대한 주택·생활자금과 중소기업에 대한 운영자금 등을 가급적 간소한 절차와 무담보 신용대출로 빌려줘 은행문턱을 크게 낮춘다는 계획.
또 이익금 중 일부를 근로자 복지증진·산업평화·노동운동의 건전한 발전 등을 위해 쓸 예정이다.
대주주인 노총의 위원장이 당연직·명예직 회장이 되고 본점도 노총회관에 두지만 일체의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길 계획이다. 명칭은 일단 노동은행으로 정했지만 근로자를 위한 은행이라는 뜻만 분명히 나타낼 수 있다면 다른 것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노총이 잡아놓고 있는 일정은 ▲올9월 (주)노동은행설립 ▲10월 금융통화운영위의 내인가 취득 ▲92년 1월 임시주주총회 개최 ▲3월 상호·심벌마크·로고 타입 등 공모 ▲2∼7월 주식에 관한 사무 ▲5월 직원채용 ▲8월20일 창립주주총회개최 ▲9월1일 영업개시 등으로 되어 있다.
쟁점=노총은 이같은 안에 따라 ①자체투자지분 1백60억 원(자본금 2천억 원 중 대주주의 출자한도인 8%)에 대한 무상지원 ②설립소요예산중 소모성비용(5억 원 가량) 무상지원 ③공제사업(보험)의 겸업허용 ④정부관리기금의 예치 ⑤특별저리자금지원 ⑥근로감독상 필요한 저축지도 ⑦노동복지회관 등의 점포지원 ⑧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금고업무 및 위탁업무 지정 ⑨인허가 절차상의 지원 등 많은 「특혜」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추진위가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목이 ①③④⑧등이다.
①과 관련해 노총은 「돈만 넘겨달라」는 주장이나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이상 방관자는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노동은행이 부실경영이 될 경우 책임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직접 30%가량의 주식을 보유, 대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것을 검토하고 있으나 노총은 정부에의 예속 등을 우려,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③과 관련해 정부는 타 은행과의 형평성, 경영상의 위험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으며 ④⑧의 경우 노동부가 관리·운영하는 기금이라면 몰라도 그 외 부처나 단체의 것까지 강요할 수는 없는 입장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노총은 신생 은행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지 않고 뜻한 바대로 사업을 펴나가기 위해서는 이 정도 배려는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노동은행 설립이 구체화될 당시부터 제기되어온 문제, 즉 ▲사실상 직능별 은행이 탄생됨에 따라 다른 직능단체들이 앞으로 은행설립을 요구하고 나설 때의 대책 ▲「근로자」의 범위가 너무 넓은데서 비롯될 수 있는 기존 은행들과의 영역싸움 가능성 ▲정부 의존도가 높아 정부입김이 노동계 상층부에 강하게 미칠 것이라는 우려 등에 대한 폭넓은 검토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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