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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폭로 시종 뒤따른 수사/오대양사건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세모개입 캐낸게 성과/세모 「경관 자수교육」 보도에 당황/검찰,슬쩍 풀어줬다 기사 나가자 재소환/수사관계자들 유 사장 거짓말엔 혀내둘러
살해암장범 6명의 갑작스런 집단자수로 시작돼 한여름 40여일간 국민들을 「오대양망령」과 숨바꼭질하게 했던 오대양사건 수사가 종결됐다.
검찰은 그동안 오대양 사채행방·집단자수에 세모가 관련된 사실을 밝혀내고 유병언 사장을 구속하는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나 집단변사사건·5공의 세모 특혜설 등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의혹을 명쾌하게 해소시키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동안 오대양사건 특별취재반으로 오대양의혹의 베일을 벗기는데 매달려온 법조·경찰기자의 취재 뒷얘기를 방담으로 정리해본다.
­오대양사건 수사를 단번에 세모로까지 확대시킨 것은 『자수한 범인들의 배후에 특정기업이 있다』는 지난달 18일자 중앙일보의 단독보도였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대부분의 언론사가 자수자들이 세모와 연관이 있다는 「감」은 잡고 있었지만 물증을 확인하지 못했고 87년 오대양사건당시 구원파·세모측의 집단행동을 의식해서인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죠.
­중앙일보 기사가 나가자마자 세모측에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큰소리치더군요.
하지만 다음날인 19일 민주당 박찬종 의원이 『오대양 배후에 세모와 유병언 사장이 있다』고 폭로했고 사태가 심상치 않게되자 세모측은 자신들에 대한 변명을 하기에 급급한 처지로 바뀌었습니다.
­박의원은 기자회견 직전 『어제 중앙일보를 보고 사실을 폭로할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더군요.
­이번 사건 취재는 사실 취재라기 보다 수사에 가까웠지요.
­살해·암매장범인들의 자수이후 「세모관련」 부분을 확인하기까지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자수를 권유·지도한 이재문씨 주변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함께 박명자씨 집에서 중앙일보가 단독입수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지요.
이를 위해 쓰레기통·다락방속을 뒤지느라 먼지를 뒤집어쓰기 일쑤였어요.
­이씨 직장인 을지로의 포장지제조업체 삼우상사 직원들은 『삼우트레이딩과는 관련없다』고 발뺌했지만 이곳에서 삼우트레이딩과 세모종이비누 포장비닐을 찾아내 심증을 굳혔지요.
또 박명자씨의 사진앨범에서 박씨·김영자·정화진씨 등이 함께 세모의 「시 호스」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장면사진을 찾아낸데다 특히 삼우상사 대표자가 세모의 고창환 상무라는 사실을 밝혀내 고상무에게 이를 추궁하자 그의 얼굴이 노랗게 되더군요.
­이번 수사결과를 놓고 볼때 검찰이 경찰보다 한수 위라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되었습니다.
충남도경의 수사과정에서 수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었지만 경찰 관계자들은 『자수자들과 세모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고 검찰 수사과정에서 현직경관이 자수모의를 주도한 사실을 밝혀내자 경찰 관계자들은 『같은 경찰에게 당한 기분』이라며 경찰수사에 허점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습니다.
충남도경은 이번에도 「자수계획 시나리오」에 완전히 말려들어 검찰의 손을 들어주는데 한몫 했다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취재팀이 만난 이 사건 관련자 숫자만도 3백명이 넘습니다.
오대양 사망자의 가족들·생존직원·채권자·법의학자·수사경찰·세모나 구원파 관계자 등 조그만한 단서라도 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접촉해 증언을 들었어요.
처음에는 세모측의 변명이 하도 완벽해 『혹시 세모가 선의의 피해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이번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은 한결같이 구원파·세모관계자들의 거짓말에 혀를 내두르더군요.
실제로 사채부분을 수사했던 검사는 참고인으로 출두한 구원파 신도가 명백한 물증에도 불구,유병언씨를 비호(?)하기 위해 거짓말하자 조서에 「진술인은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하나요」라는 질문을 넣었답니다.
그러니까 이 참고인은 「습관이 되어서 그런가 봅니다」라고 대답했으며 검사는 이 명답(?)을 그대로 조서에 기재했습니다.
­자수모임을 처음부터 주도한 이재문씨는 모임현장에 「이영문」이라는 경사가 있었다는 첩보를 입수한 기자에게 『당시 모임에 나왔던 여자들이 나에게 「이형부」라고 불렀는데 그걸 잘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냐. 남들이 나보고 형사같다고도 한다』는 등 기상천외한 즉석 거짓말을 늘어놓아 기자를 한동안 속였을 정도니까요.
사채모집책 송재화씨를 유사장이 『전혀 모른다』로 일관한 것에서부터 세모간부들은 곤란한 문제는 무조건 『언론의 과잉보도』로 몰아세우는등 「입만 열면 거짓말」이었습니다.
­자수모임에 세모의 고위간부·서울 서초경찰서 이영문 경사가 있었다는 중앙일보의 특종보도는 자수동기·배후에 세모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습니다.
검찰은 이경사를 불러 조사를 벌이고도 이를 숨긴 채 이경사를 풀어줬다가 중앙일보 보도가 나간뒤 다시 소환하는등 갈팔질팡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유사장 구속의 직접 계기가 된 세모개발실 김기형 차장 연행도 중앙일보의 특종보도였죠.
­중앙일보 취재팀은 김씨의 집앞에서 3일간 철야끝에 김씨의 연행사실을 목격,유사장 소환이 임박했다는 내용까지 함께 보도했습니다. 같은날 다른 신문들은 김씨를 수배했다고 보도했고 사실 김씨는 석간신문이 나올 낮시간에 대전지검에 도착했지요.
­유병언 사장은 검찰조사과정에서 이름 외에는 심지어 주민등록 사실까지도 『모른다』로 일관해,검찰관계자들은 『유씨를 아예 없는 것으로 보고 수사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 정도였습니다.
유씨에 대해 「맹동성 허언중독증환자」라고까지 평한 한 검사는 『유씨의 뻔뻔스러운 태도로 볼때 사채사기액수를 12억원 정도라도 밝혀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유씨에 대한 수사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검찰관계자들은 세모 유사장을 지난 1일 구속시킨 뒤 자수동기·변사사건 등을 집중수사한 것은 「인천상륙작전」의 승리에 비유하더군요.
검찰은 당초 유사장의 구속시기를 놓고 고심을 해오다 구원파·세모관계자들에게 「태양」같은 존재로 인식되는 유사장을 구속시켜야 참고인들의 기를 꺾고 수사에 진척을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결국 이 작전이 성공한 셈이 됐어요.
­이번 사건을 취재하며 절실히 느낀 것은 역시 「기록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돈·종교·변사·권력유착 등 사회부기사의 요건을 모조리 갖춘 최대의 사건을 취재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주민등록부·등기부등본·전출입색인부·재산세과세증명서·사업자명부 등 인간관계의 모든 것을 기록한 문서였으며 경찰팀은 저녁때만 되면 복사한 서류를 한뭉치씩 들고 들어와 마치 「흥신소」를 방불케 했습니다.
­32명 집단변사의 사인을 둘러싸고 법의학자들 사이의 의견이 정반대로 엇갈린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죠.
당시 부검의 황적준 박사는 처음부터 자살을 주장했고 황박사의 스승이고 법의학계 최고권위자인 문국진박사는 타살의혹을 제기했는가 하면 여자들 몸에서 발견된 정액도 『정액이다』『아니다』로 의견이 갈렸습니다.
법의학자들도 그럴 정도니 일반인들의 혼란이 어땠을까는 상상이 갑니다.
­중앙일보는 문박사가 타살의혹을 제기한 저서를 출간 직전에 입수,단독보도하여 관심을 끌기도 했지요.
­구원파내의 통용파(서로 네것 내것 없이 물건을 공유한다는 의미)에 대한 보도가 나간 뒤부터는 한때 「통용합시다」(함께 나눠씁시다)는 유행어가 돌기도 했습니다.
특히 오대양수사를 맡고 있던 대전지검에서는 검사와 기자들사이에서 『담배좀 통용합시다』『정보좀 통용할 게 없습니까』는 등의 얘기들이 한동안 오갔었죠.
­오대양사건은 36명의 죽음과 종교적 광신,1백억원이 넘는 돈이 얽힌 전형적인 강력사건이었습니다.
게다가 정치권력의 비호설까지 뒷받침돼 의혹이 꼬리를 무는 사건특징을 보였습니다.
이에 따라 언론의 취재열기도 가열돼 치열한 취재경쟁을 빚었습니다.
검찰의 종합수사결과에 비추어 보면 이같은 언론의 보도태도와 방향제시가 수사의지를 촉구하는 긍정적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복더위에 모두들 고생 많았습니다.<정리=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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