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쿠데타 반전의 힘 모아줄 때(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반쿠데타 개혁파의 본부인 러시아공화국 의회가 한차례 쿠데타군의 공격을 받은후 소강상태에 있는 혼미속에서 페레스트로이카의 부활 가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앞의 위국에 지나치게 현혹되어 사태를 너무 단기적으로,기정사실로 단정하기에는 아직 많은 불확실한 요소들이 남아있다.
이번 쿠데타의 성격으로 보아 이의 성공은 개혁을 지향해온 소련인민들의 운명은 물론 한반도를 비롯한 전세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이 분명한 이상 이를 좌절시킬 수 있는 가능성들을 점검하고 이를 강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첫째 가능성은 소련 국내의 저항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난 6년간 키워온 페레스트로이카의 이상은 가시적 열매를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국민들 사이에 불만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스탈린주의 민주화개혁에의 욕구를 넓게 확산시켰다.
이 민의를 바탕으로 15개 연방공화국은 상당한 수준의 독자성을 갖게 되었으며 개혁파의 세력은 군부·KGB·행정부에도 스며들어 있다. 이들 세력이 옐친을 정점으로 결집할 경우 쿠데타 세력은 내란의 위기를 무릅쓰지 않는 한 쿠데타를 전국적으로 성사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공화국의회를 무력으로 장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겠지만 두대륙에 걸친 방대한 소련을 무력만으로 장악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쿠데타 주동세력에서 KGB의장을 포함한 세사람이 이미 「직무수행 불능」을 이유로 물러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평가할만한 일이다.
둘째 가능성은 서방국가들의 압력이다. 역사적으로 내분에 대한 외국간섭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또 소련처럼 핵강대국에 대한 외부압력은 그 정도가 강하면 자칫 전쟁을 유발할 위험도 안고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서구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대응책은 쿠데타세력을 고립시키고 개혁세력의 입지를 강화시키는데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서방국가들은 한결같이 비헌법적 수단에 의한 정권교체를 비난하고,사태가 정상화되지 않는 한 고르바초프와 맺은 경제협력 약속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있다.
소련 경제의 파탄을 쿠데타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보수파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 고립이야말로 가장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두가지 가능성은 다같이 그 실현에는 시간을 요한다는 흠이 있다. 개혁파의 본부를 무력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지금 상황속에서는 당장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쿠데타가 크렘린의 밀실에서 소수 보수파 지도자들에 의해 꾸며진 음모라는 현재의 판단이 옳다면 보수파가 전국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작업은 하루 이틀에 끝날 수 없는 일이다. 26일로 예정된 소연방최고회의에서 보수세력은 자신들의 쿠데타를 추인받으려 할 것이다. 그때가 이번 쿠데타의 고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외부세계는 소련내 개혁파의 고군분투를 성원해서 쿠데타를 좌절시킬 수 있는 요인들을 북돋워주도록 모든 조치를 신속히 취해야 할 것이다.
모스크바의 총성이 위협하고 있는 것은 냉전체제의 해체와 군사력 대신 화해와 번영을 향한 새질서 구축 노력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그 결과는 바로 우리의 일이기도 한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