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조용한 이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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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부엌에 서서

창 밖을 내다본다

높다랗게 난 작은 창 너머에

나무들이 살고 있다

나는 이따금 그들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

잘 보이지 않는다

까치집 세 개와 굴뚝 하나는

그들의 살림일까?

꽁지를 까딱거리는 까치 두 마리는?

그 나무들은 수수하게 사는 것 같다

잔가지들이 무수히 많고 본줄기도 가늘다

하늘은 그들의 부엌

지금의 식사는 얇게 저며서 차갑게 식힌 햇살이다

그리고 봄기운을 한두 방울 떨군

잔잔한 바람을 천천히 오래도록 삼키는 것이다



집은 좁거나 직장이 너무 멀고, 이웃들은 너무 시끄럽거나 차갑고, 할 일은 많고 꼭 해야 할 일은 못 하는 길은 도시로 뻗었다. 오늘은 꽃샘. 잔가지들 따라 서울까지 온 봄이 주머니가 텅 비었다. 어쩌나, 마음이 조용하지 않으니 조용한 이웃을 찾아 밥 먹는 법부터 배워 봐야지.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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