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정국」 주도 노린 유엔행/어려운 손익 계산끝에 내린 결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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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총재/“밀약설·야통외면” 눈총 감수/정계변화 관련 행보 큰 관심/「과격」인상 벗는 변신기회로도 활용
김대중 신민당총재가 15일 8·15경축사를 통해 당내외의 세찬 반대와 「여야밀약설」등이 나도는데도 불구,유엔참석 결심을 밝힌 것은 앞으로 정계에 큰 변화를 몰고 올지도 모를 유엔정국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의 과격·투쟁이미지에서 탈피,초당적인 협조와 대처를 함으로써 보다 큰 정치인으로서의 의연한 모습과 온건주의로서의 변신을 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총재는 이날 기념사에서 그의 결심배경을 ▲여야의 초당적 대처 필요성 ▲국민적인 지지와 여망 ▲19년전 동시가입을 주창한 사람으로서 심정적 동인 등 4가지를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웠다.
측근들은 김총재가 유엔참석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를 자신이 바로 지난 72년 우리나라 최초의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주창자라는 긍지와 자부심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승형 총재비서실장은 『이 때문에 김총재 자신은 애당초부터 유엔참석의사를 갖고 있었으나 당내외의 반대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보다 대국적인 차원에서 역사의 현장에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얻어 참석을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표면적인 이유 외에 김총재가 유엔참석을 결심한 배경은 앞으로 전개될 정치상황에 대한 원려심모의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오는 9월24일 유엔가입후 필연적으로 조성될 유엔정국에 적극적·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새로운 여야 동반관계를 형성하려는 의도라는 풀이다.
유엔정국은 앞으로 남북 정상회담 추진등 필연적으로 남북화해정국,즉 통일정국으로 이어지고 이보다 선행단계로 지역감정 탈피를 목표로한 동서화해정국 조성이 불가피하리라는 진단을 내렸으리라는 것이 정가의 추측이다.
이렇게 됐을 경우 동서간에 깊이 팬 골을 메우고 그 응어리를 풀기 위한 선행조치로 권력구조를 비롯한 제도적 장치의 개폐문제가 제기되리라는게 야당가의 전망이다.
따라서 김총재는 이번 유엔참석을 통해 시대흐름에 함께하는 동반자로서의 위치와 이미지를 확고히 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상황을 주도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또 남북 정상회담의 징검다리로서 김총재의 평양방문도 가상해 볼수 있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어 지금까지 자신을 옥죄어 왔던 「레드 콤플렉스」를 말끔히 탈색시키고 통일의 주역으로서 역할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김총재로서는 광역선거 참패후 과거의 정치패턴을 답습하기 보다는 당내외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좀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정가에는 벌써부터 노­DJ(김대중 총재) 신협력관계 형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고 이로 인해 「노­김밀약설」 의혹도 뒤따르고 있는 형편이다.
김총재가 지난달 16일 청와대 회동직후부터 지금까지 한달여 유엔참석 여부를 결정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바로 이같은 의혹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는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김총재는 그동안 비서진에게 유엔참석에 대한 찬반여론조사를 실시토록 하고 유엔참석에 따르는 득실을 면밀히 분석하도록 하는 한편 외국의 사례까지도 연구토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에 대한 조사결과 영국은 2차대전중 처칠 수상(보수당)이 얄타회담에 당시 야당인 노동당의 애플리 당수를 동반한 사실이 있고,스웨덴은 유엔총회 대표단에 각 정당출신 의원을 포함시켜 여야간에 균형을 잡도록 하고 있어 이번 김총재의 유엔참석은 흠잡힐 일이 못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김총재 자신이 이날 경비 자비부담의 별도 출발을 굳이 강조,「수행」의 인상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 것은 당내외의 반대목소리가 그만큼 거세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입증한 셈이 되고 말았다.
이들 반대론자들은 야권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유일한 대안인 김총재가 「거듭된 실정의 주역」이자 「군사정치의 상징」인 노대통령의 들러리를 서는 것은 DJ의 순수지지자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또 재야세력들로부터 「반통일」「반민주」 세력으로 비판받고 있는 노대통령에게 「통일의 길을 연 대통령」으로서의 위상만 높여준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당내 비주류와 민주당측은 『야권통합등 정치현안을 제쳐두고 유엔에 참석하는 것은 김총재가 야권통합에는 뜻이 없고 여야 밀월구도를 통해 양당구조를 고착화시키려는 저의』라고 비난한다.
이같은 반대와 자신의 표현대로 『여권의 제2 정계개편 음모』를 무릅쓰고 유엔 참석으로 마음을 정한 것은 급진과격세력의 퇴조·구정치행태에 대한 불신 등 최근의 흐름을 감안할때 실 보다는 득이 크다는 정치적 손익계산을 했으며 이에 따라 정면돌파방식으로 유엔정국을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로 보여 앞으로 그의 정치행보가 주목된다. 물론 그 뒤안에는 새로운 정계재편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미국에서의 정치밀약은 절대 없다』는 그의 강한 부정에도 불구,여전히 관심의 시선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유엔참석은 앞으로의 정국흐름에 큰 변수가 될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정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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