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 재정난|매년 돈 빌려다 학교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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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연초 서울대·이대·건대 등의 예체능 입시비리에 이어 또다시 터진 건대·부산 고신대 입시부정으로 대학의 외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건대의 경우 입시관리가 대학자율에 맡겨진 88년 이후 대학 수뇌부가 도서관건립 등 재원조달을 명분으로 연례행사처럼 부정을 주도하면서 일부는 착복까지 한 혐의가 드러나 대학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교육관계자들은 이같은 구조적 부정의 원인을 ▲재단·대학 수뇌부의 부정기부금 입학에 대한 죄의식마비 ▲교육부 감사기능의 미비 ▲사전예방장치 부족 ▲사립대학의 재정난 등에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전국 1백36개 4년제 대학 중 91개에 이르는 사립대는 대학생 중 75%의 교육을 맡고있는 우리 고등교육기관의 중추인 만큼 사립대의 현존하는 재정난은 외면할 수 없는 사항이며 건대사건을 계기로 또 다른 쟁점이 되고 있다. 사립대재정난의 실상과 개선대책을 알아본다.
◇재정난의 실상=최근 몇 년 새 사립대의 재정난이 심해지자 총·학장들은 정부 고위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사립대도국가의 공기임을 들어 재정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 대학교육은 재정 부족으로 인한 교육투자부실로 뜨거운 물에 타 마셔야할 코피를20도의 물에 타 먹는 꼴입니다.』
전국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구병림사무총장의 말이다.
『어떤 대학식당에 가보면 학생들이 식기에 음식을 받은 뒤 자리가 없어 식당 밖에서 겨울눈을 맞으며 식사를 합니다.
또 교수확보율이 낮아 교수 한 명이 2백여 명의 학생에게 마이크수업을 하고 난방이 미비해 코트를 입고 강의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도서관에는 자료가 부족해 도서관에 가도 과제물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교육환경 나빠져>
실제로 총·학장들 사이에서는 엄살도 섞어 『이대로 가다가는 몇몇 사립대가 재정난으로 도산할지 모른다』는 말이 농담 아닌 농담으로 떠돌고 있다.
연간 예산이 재단의 전입금 9억여원을 포함, 3백억원선인 한국외대의 지출구조.
인건비가 1백60억원선, 시설비(부채상환포함) 30억원, 관리운영비 24억원, 장학금 23억원등, 여기에 특별한 사업을 추가하면 바로 총수입액을 넘어버린다.
외대는 이로 인해 최근 2년 새 연간 16억원의 부족액이 발생, 고심하고 있다.
89년9월 학생 46명 부정입학사실이 검찰에 적발돼 서리를 맞은 동국대의 경우 그 해 예산에서 35억원의 차질이 발생한 상태였다. 같은 해 1학기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거부투쟁으로 등록금이 동결돼 17억원의 적자가 생긴데다 경주의과대학부속병원 신설 등으로 예산에 구멍이 생겼던 것이다.
대학교육협의회측은 이로인해 사립대가 금융기관에서 빌린 부채액만도 1천6백억원선에 이르고 있다며 만성적 재정결핍은 교육여건의 낙후로 이어져 결국 한국대학교육의 질을 저하시키는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교육의 질 저하는 71%에 그치는 4년제 대학의 교수확보율(사립대는 67%)에서 바로 나타나 시간강사의 다수 활용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교세경쟁도 한몫>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 대학의 교수 1인당 학생수는 평균 38명이나 미·일·영등 주요 외국대학은 6∼15명에 그치고 있고 학생 1인당 공교육비도 우리가 연간 1백30만원(89년 기준)인 반면 외국은 5백만∼2천5백만원에 이르고 있다.
학생 1인당 도서관 장서수역시 우리는 18권인 반면 외국대학은 2백∼6백권이며 국가 공교육비중 대학교육비의 비중도 우리는 9%, 외국은 20∼40%로 집계되고 있다.
또한 우리 대학교육은 70년대 이후 세계에서 유례없는 양적팽창을 거듭했으나 실적 여건은 계속 악화되어온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육부의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70∼90년 20년 사이에 강의실당 학생수는 29명에서 90명으로, 교수 1인당 학생수는 22명에서 38명으로, 학생 1인당 장서수는 29권에서 18권으로 각각 악화됐다.
◇재정난의 원인=▲사립대 재단의 무리한 교세확장 경쟁과 합리적 경영능력 부족에도 원인이 있는 한편 ▲재단출연없이 등록금에 의존하는 수입구조 ▲국고지원부족 ▲기업의 기여부족 ▲재단의 투자의욕감소 ▲재단 수익사업에 대한 지원책 부족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건대가 동양 최대라는 상허도서관 건립을 추진하다 자금난에 부닥치자 부정입학을 시행한 것이나 단국대가 올 들어 천안에 부속병원을 착공했으나 재원에 차질이 생겨 고민하고 있는 것 등이 무리한 대학발전 추진으로 재정난을 자초한 예다.
재단이 대학 측에 주는 전입금이 쥐꼬리만하고 연간 예산의 80%이상을 학생등록금에 의존하는 점은 우리 사학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교육부의 지난해말 조사(83개 사립대 대상) 에 따르면 재단 전입금의 예산중 평균비율은 16%였고 전입금 비율이 5%미만인 대학이 숙대등 36개대로 전체의 43%나 됐다. 전주대등 3개대는 아예 0%였다.
사대재단측은 이에 대해 『대학을 설립한 것만으로 국가에 큰 기여를 한 것이므로 매년 영원히 운영비를 대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반박하지만 이처럼 낮은 전입금 비율은 재단측의 성의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국고지원의 경우 연간 사립대 운영비의 1%에 그쳐 외국에 비해 유난히 적은 것은 사실이며 이 때문에 대학교육협의회는 운영비의 10%선 지원(연간 2천억원)을 줄곧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협의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사립대에 대한 정부보조금은 운영비의 22%이며 일본은 15∼30%에 이르고 있다.

<수익사업 뒷받침>
◇대책=교육부는 사대 재단측에 대해 기본재산(임야 등) 활용을 통한 수익사업확충을 종용하는 한편 나름의 국고지원확대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예산당국이 그대로 수용해 줄지는 미지수다.
교육부는 96년까지 운영비의 5.5%수준까지 국고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한편 이공계학과 증원에 따른 사립대 시설비 보조를 위해 96년까지 6천4백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사학진흥기금」도 96년까지 2천4백억원 규모로 확충시킨다는 복안이다.
사립대측은 국고지원이나 재단 전입금의 대폭적 확충이 쉽지 않은 만큼 기부금입학을 양성화한 「기여입학제」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주장해왔고 교육부도 건대사건 후 국민여론이 수용한다면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여전히 여론은 긍정적이지 않아 전망은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대학배출 인력의 수혜자인 기업의 대학지원 확대와 사학재단 수익사업에 대한 세제·금융지원 등도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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