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는 원래 탈민족 착각하게 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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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에서 민족주의를 빼자'고 주장한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35)씨의 도발적 발언(본지 2월 7일자 2면, 8일자 3면)이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화평론가 김종휘(41.사진)씨가 박씨의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한류에서 민족주의는 없다'는 얘기다.

'한류(韓流)'란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서 생성된 어떤 문화 콘텐트가 어떤 연유로 인해 해외에서 널리 수용되는 현상이다. 핵심은 해외의 어떤 대중이 어떤 욕구 때문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문화 콘텐트를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한류의 지속을 바란다면 일차적 관건은 해외의 그들이 바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해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한류 논의는 이 같은 해외 수용자 측면은 간과했다. 대신 국내 생산자 또는 그 동류 의식에 머물렀고, 그조차 국가의 홍보용이나 한국산 제품의 해외 마케팅 효과에 만족하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언론과 정부의 한류 예찬은 특정 스타의 유명세나 몇몇 드라마 사례를 남용하는 자화자찬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한국의 전통예술이나 근현대 문화 또는 아시아의 공통된 식민지 경험이나 다문화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시각도 있었지만, 여전히 당위론에 그친 감이 있었다.

한류 담론의 현주소가 이런 데 박진영씨는 "한류에서 민족주의 성향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 수용자들이 한류를 민족주의로 오인케 하는 대목이 있다면, 정부더러 세련되게 하라거나 네티즌의 일부 애국주의가 과하다고 비판해도 족했다. 그럼에도 '한류 민족주의'를 운운하여 마치 한류가 민족주의였던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박진영씨는 "문화적 소통"인 한류가 "정치.경제적 이슈에 좌우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한류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넘어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를 바라는 그의 진심을 믿는다.

하나 그 주장을 위해 정체가 흐릿한 '한류 민족주의'를 겨냥한 것은 되레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빌미를 준다. 다시 말하지만, 한류는 아시아 시장에 촉발된 한국발 대중문화의 글로벌 현상이다. 그것은 철저하게 무국적이자 탈민족적인 연예산업의 자본 논리에 충실한 것이다.

때문에 박진영씨가 "한류 주무대는 동아시아였으나 앞으로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를 향해야 한다"는 포부도 특별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류가 미국에 수용되는 근거는 아시아의 대표라는 지분 때문이다. 이는 다시금 한류를 아시아 맥락에서 돌아보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박진영씨 말대로 한국 사회는 여전히 "다양성이 적고 획일성이 강하"지만, 그 해결책이 미국으로 한류를 확장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 정벌'이니 '중국 정복'같은 보도가 언론 상업주의의 방편이듯, '한류=민족주의'라 보고 민족주의를 탓하는 주장도 실은 연예산업의 입장에서 느끼는 어떤 불편함을 피력하는 한 방편에 불과해 보인다.

그간 한류를 대표한 몇몇 스타 중심의 연예사업이 그런 민족주의적 이미지에 이끌린 과도한 국내 부양책에 안이하게 편승했다가 뒤늦게 그 부담을 덜어내려는 제스처는 아니길 바란다.

김종휘<문화평론가.방송인.하자센터 기획부장.노리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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