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난동에 이상해진 겨울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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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서울의 평균기온은 기상청이 근대적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래 세 번째로 높았다. 인천.대구.수원.청주.울산.제주 등도 각 도시의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높았다. 이 같은 이상고온 현상은 겨울 비즈니스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 따뜻한 날씨에 울고 웃고=서울 명동 밀리오레의 올 겨울 의류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20% 이상 줄었다. 이 업체 유종훈 과장은 "단가가 높은 외투류가 많이 팔려야 매출이 오르는데 이런 옷들이 팔리지 않아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뜻한 겨울은 백화점의 신년 세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1월 있었던 롯데.신세계.현대 등 주요 백화점의 신년 정기세일 실적은 겨울의류가 잘 안 팔리면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세일 막판 닥친 반짝 추위가 없었다면 매출이 크게 떨어질 뻔했다. 신세계백화점의 남녀 패션 판매는 7% 정도나 줄었고, 겨울 패션의 대명사로 불리는 모피는 20%나 덜 팔렸다.

반면 야외활동 상품은 잘나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1월 골프복.골프클럽.등산복 등 야외용품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24.8%나 늘었고, 2월 현대백화점의 골프복 판매액도 40%나 증가했다. 이 때문에 의류.유통업체들은 예년보다 2주일가량 봄 신상품 출고를 앞당기고, 겨울상품은 서둘러 아웃렛으로 보내는 등 재고 처리에 나서고 있다.

이상 난동의 영향은 의류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마트의 경우 전기.석유.가스히터 등 난방용품 매출이 20%나 줄었다. 한국가스공사의 올 겨울 가스 판매량도 전년보다 10%나 줄어 주가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대도시 근교에서 영업을 하는 눈썰매장도 눈이 오지 않아 조기 폐장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거꾸로 날씨 재미를 보는 곳도 있다. 해태제과의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 중순까지 아이스크림 매출은 15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20%나 늘었다.

이 회사 하영호 팀장은 "예년 겨울에는 과자 사이에 끼워 먹는 '샌드'류 아이스크림을 많이 찾았으나 올해는 바(막대)나 콘 제품이 잘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칠성의 이온음료 '게토레이'는 지난달 15억원어치나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나 매출이 늘었다.

◆ 중요성 더해가는 날씨 마케팅=현대백화점 김석주 영캐주얼 바이어의 수첩 안쪽에는 지난해 날짜별 기온.날씨와 최근 발표된 일.주.월별 예보표가 있다. 김씨는 "신상품 입고나 재고 처리 행사 결정을 위해서는 날씨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며 "중.단기 매출에 날씨가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에서 날씨는 마케팅의 중요한 변수로 점점 더 떠오르고 있다. 실제 의류업계에는 11월 기온이 낮을수록 그해 겨울 매출이 높다는 경험적 통설이 있다. 지속적인 온난화 현상에 따라 의류업계의 경우 겨울제품 비중을 줄이고 '간절기'(겨울철에서 봄철 사이) 제품을 늘리고 있다.

날씨정보업체 케이웨더의 김종국 마케팅 팀장은 "제품 컨셉트나 판매 전략을 결정하기 위해 6개월~1년 정도의 장기 예보를 물어오는 패션업체가 많다"고 말했다.

이현상.박현영.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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