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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보복 두려워 숨는 나라, 공권력 어디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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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인기 영화배우 권상우씨가 폭력조직 두목 출신 김태촌씨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대표적 한류 스타가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곰팡이처럼 살아가는 조직폭력배들에게 모진 시달림을 받았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파문이 확산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잠적한 권씨의 행동이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분명 당황스럽고 보복이 두렵기도 할 것이다. 검사 시절 김씨를 검거했던 함승희 변호사의 말대로 김씨는 "이름 자체가 흉기인 사람" 아닌가. 김씨는 구속 기소됐더라도 그 휘하에 보스의 말이라면 물불을 안 가릴 '어깨'들이 수없이 있지 않겠는가.

사실 권씨 측은 지난해 말 김씨의 협박 사실이 알려진 직후 "서로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정식 고소하지도 않은 김씨의 협박 부분에 검찰 수사가 집중되는 데 분명 부담스러웠을 터다.

하지만 구속된 조직폭력배가 두려워 피해자가 도피해 숨는 것은 대명천지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 어느 땐데 깡패가 "나, 누군데"라는 말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단 말인가. 특히 협박받은 사람이 보복이 무서워 숨었다면 이 나라의 공권력은 어디로 갔는가. 당연히 경찰과 검찰이 피해자를 보호해 주었어야 한다.

권씨 같은 특급 배우가 그 정도라면 수많은 무명 연예인은 얼마나 심한 공포 속에 몸서리치고 있겠는가. 함 변호사는 "고 이주일씨가 연예협회장을 맡았을 때 조폭 근절 궐기대회를 한 적이 있으나 연예인들을 한 명씩 불러 물어보면 입을 열지 못했다"고 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워서였겠지만 그런 태도들이 점점 더 환부를 곪아 터지게 만든 것이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에서 조폭이라는 고름을 완전하게 짜내야 한다. 그러려면 연예계도 환부를 째는 고통에 용기 있게 맞서야 한다. 스스로 몸을 청결하게 유지하려는 자정 노력도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