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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梁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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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금 상하이(上海)에 있는 예원(豫園)이나 쑤저우(蘇州)의 졸정원(拙政園)은 중국의 정원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화려한 저택과 함께 작은 호수와 기이한 괴석들이 촘촘히 배치돼 있고 값비싼 관상수도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명대에 지어진 이들 정원은 당시 일반 민가의 생활을 감안하면 호화의 극치를 다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에 훨씬 앞서 중국 정원 문화의 대표가 된 곳이 있다. 한(漢) 문제(文帝)의 아들 양효왕(梁孝王)이 지은 양원(梁園)이다. 현재 허난(河南)성 카이펑(開封)에 있다. 이 정원의 특징은 예원이나 졸정원과 마찬가지로 초호화판이었다는 점에 있다. 지금은 모두 허물어져 정확하게 고증할 수 없지만 역시 각양각색의 누각이 즐비했고 호수와 기암괴석, 화려한 나무가 가득 차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경치가 매우 빼어났고 조용해 달콤한 휴식이 가능했던 이 양원은 한대 문사들이 꼭 한 번 묵고 싶어 하는 동경의 장소였다. 양효왕은 실제 수많은 당대 명사를 초청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모자랄 게 없었던 한 왕실의 왕자 양효왕은 문사들을 넉넉하게 대접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후 줄곧 이어졌던 식객(食客)의 바람 덕에 많은 문사는 이 양원의 신세를 톡톡히 진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양효왕이 한 왕실의 권력 다툼에서 밀리는 일이 발생한다. 황제의 노여움을 산 그는 결국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만다.

염량세태의 한 장면이 여기서 벌어진다. 그 많던 문사의 발길이 끊긴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이 양원의 일화를 전하면서 당시 문사들이 "양원이 비록 좋기는 하지만 오래 머물 곳이 아니더라(梁園雖好 終非久戀之家)"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사마천이 전한 이 말은 요즘 중국에선 '안일한 환경에 푹 빠지면 게을러진다'는 뜻의 경구로 쓰인다. 쓰임새는 그럴지 몰라도 권력의 부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문사들의 경박하고 비속한 저울질이 더 눈에 띈다.

배반과 이탈. 권력의 세계에서 늘 등장하는 행태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결국은 집단으로 탈당을 하고 말았다. 명분과 실제라는 두 가지 면에서 도대체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침몰하는 당에서 발 빼자는 셈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한결 쉬울 텐데 말이다. 여권 대통합을 위한 전략일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단순 철새 정도가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한 기만이다. 더 큰 욕을 얻어먹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