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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이기주의를 경계하자(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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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환경영향평가의 주민의견수렴제 실시
이달부터 실시에 들어간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주민참여제도는 관계주민의 의사반영이라는 바람직한 측면과 편협한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어 경계를 요한다.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 발효에 따라 이달부터는 철도와 공항의 건설이나 하천·산지·관광단지·특정지역의 개발,매립 및 개간사업,체육시설의 설치,폐기물 처리시설의 설치등 9개 사업에 대해서는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하고,그 과정에 관계주민의 의사를 수렴하도록 돼있다. 주민의견 수렴방법은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보내면 이들은 이 평가서를 주민들에게 공람시키도록 돼있다.
여기서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첫째,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신뢰문제다. 사업자가 주체가 돼 실시하는 영향평가에는 주체자의 입김이 들어가 그 객관성과 공정성이 왜곡될 소지가 전혀 배제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평가서의 작성과정에 공신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평가비용은 사업자가 부담하되 영향평가기관의 선정이나 평가과정에 환경처가 관여해 그 객관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평가서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와 판단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환경문제에 전문적인 식견이 있을리 없는 일반 주민들이 과연 얼마만큼 평가서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사업자의 호도된 이론을 반박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환경영향평가서의 공람은 사업시행을 합법화시키는 요식행위에 그칠 공산도 크다. 신문 한구석에 평가서 공람공고를 내고 눈에 띄지도 않게 평가서를 붙여놓았다가 떼어버린 뒤 주민의견수렴 절차를 마친 것으로 얼버무릴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평가서에 대한 설명회와 공청회를 의무화해야 하겠다.
또한 환경처의 의견을 묵살하고 사업담당행정기관이 공사를 강행했을 경우 이를 제재할 수 없는 폐단을 우리는 수도권 전철확장공사와 골프장시설공사의 일방적인 시행청 독주에서 경험한 바 있다. 이런 폐단을 시정하려면 환경처의 위상을 격상시켜 통제권을 강화하든지, 환경보전위원회의 기능을 보다 활성화시킬 필요성이 절실하다.
반면에 해당지역 주민들의 공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이 대국적인 의미에서 국가적 사업을 효율적으로 시행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요소임을 강조하고 싶다.
자연을 보전하고 훼손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자원의 절약이라는 의미에서 원칙적인 명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전체 국민,또는 광역의 주민을 위한 시설의 공사나 개발이 불가피한 경우는 반드시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국적인 사업이 소규모 주민의 사소한 불편이나 불이익을 앞세운 거부로 인해 장애를 주는데 환경영향평가의 주민의견 수렴제도가 남용돼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 전국 도처에서는 주민들의 혐오시설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폐기물처리장과 쓰레기하치장 설치에 대한 주민반대시위가 그 대표적인 예다. 모두가 매일 같이 생활쓰레기를 쏟아내면서도 그것을 처리하거나 매립할 시설은 내집 주변에만은 안된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심지어는 서울시내 어느 지역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이 일을 끝내고 몸을 씻을 샤워장을 동네에 설치하는데도 거센 반발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도로를 넓히는 공사에 온동네 주민들이 환영을 하는 반면 길가에 사는 주민들은 소음이 심해진다고 반대시위를 벌였다. 환경영향평가제가 이처럼 소수집단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위한 사업을 방해하는 구실이 돼서는 곤란한 일이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소수의 불이익과 희생을 강요하는 다수의 횡포도 온당치는 않다. 이들의 불이익도 적절히 보상하는 방법이 강구돼야 마땅하다.
지방자치제의 실시로 지금까지와는 달리 막대한 지방재정의 자체조달이 불가피해졌다. 이런 이유로 각종 지역개발사업이 추진될 전망이다. 이 경우는 지방행정기관과 주민이 합세해서 환경영향평가제도를 오용할 우려도 없지 않다. 어떤 경우이건 환경의 보전이나 개발사업이 국민 전체의 보다 나은 미래의 삶을 보장하는 방향에서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운영돼야한다는 전제는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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