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머 겉도는 인물묘사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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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TV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업 묘사가 현실과 동떨어진 채 어설프게 이뤄져 보는 이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전문직등 특정 직종의 경우 더욱 심해 드라마구성의 밑바탕인 사실성이 결여됨으로써「깊이없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품기고 있다.
이런 드라마들로는 현재 방송중인 MBC-TV의『행복어사전』과 KBS-2TV의『야망의세월』이 대표적이다.
둘다 재미로만 따지면 손꼽을 만한 드라마일지는 몰라도 직업묘사 및 관련인물묘사가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치다 보니 드라마의 생명력이 사라진지 오래다.
잡지사 기자들의 생활을 다룬『행복어사전』의 경우 인사를 둘러싼 부원들의 항명이나 선후배사이의 장난스러운 대화장면등을 보면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을 TV드라마로 옮길 때 신경썼어야 할 해당 직업세계의 실상을 제작진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게 주변의 지적이다.
배역의 본래모습을 정확히 표출해 보려는 연기자들의 노력이 미흡한 것도 문제다.
『야망의 세월』은 증권가를 그리면서「5공의 큰손」J씨를 연상시키는 오마담을 좌지우지하는 극중의 대모역을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묘사해 시청자들의 역겨움을 사고 있다.
70년대 당시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등장시킨 인물이라지만 상식을 넘어선 카리스마적 배역설정은 시청자의 거부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이밖에 최근 막을 내린 MBC-TV『장미빛 인생』의 경우도 검사·의사세계가 지나치게 직업과는 무관한 사랑싸움의 연장선상에서 묘사되는 바람에 극의 주제와 겉돈다는 평을 들었다.『특정직업의 부정적인 면이 TV드라마에 나왔다고 해서 종종 말썽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엉터리묘사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입니다. 사실적 접근이 안될 때 드라마가 안아야 할 부담이 어떤지는 누구나 다 알지 않습니까.』
작가·연출자·연기자들의 배역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이해없이 살아 숨쉬는 드라마를 만들기는 어렵다는데 제작간부들은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반적으로 드라마를 끌고 가며 등장인물의 직업을 그때그때 편의상 골라잡는 제작풍토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멜러물 위주로 흐르는 최근의 드라마제작 분위기와 그날그날 허덕여가며 촬영을 해야하는 고질적 폐단을 없애고 대신 본격적으로 사회의식·직업세계의식을 다룬 드라마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기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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