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께 주한미군 감축 본격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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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25일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자 정부 당국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록 부시 대통령이 주한미군 등 특정지역 주둔 미군의 재배치 구상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주한미군의 감축을 포함한 재편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국방부를 비롯해 정부의 외교안보 부서의 상당수 당국자들은 "내심 예견했던 상황이 표면화된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 움직임은 2001년 1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감지됐다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주한미군의 감축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미국 인사도 있다. 가이 애리고니 미 국방부 정보국 동아시아국장은 지난 6월 "주한미군을 1만~1만5천명 정도 감축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당시 그의 발언은 기존에 한.미가 발표한 공식 입장과는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있어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주한미군의 감축을 '당연한 수순'으로 분석해온 군사 전문가들은 의미있는 발언으로 규정했었다.

현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 군사전략과 주한미군 감축은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숫자가 줄어든 대신 전투력이 증강된 병력을 배치하는 것이 미군의 새로운 전략이며 이는 한국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애리고니 국장의 발언은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5월 '향후 4년간 1백10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주한미군 전력을 증강하겠다'는 미국의 발표도 사실상 주한미군 감축과 연계된 전력 증강계획이라는 게 그들의 관측이다.

게다가 지난 7월 미 육군의 신속배치여단인 '스트라이커 전투부대'가 첫 해외훈련지로 한국을 택한 것도 주한미군의 감축 움직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일부 정부 당국자들은 보고 있다. 주한미군 병력을 감축하더라도 유사시 즉각적으로 필요한 병력이 한반도에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한국 정부에 확인시켜주는 훈련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도 정부 당국자들은 곧바로 주한미군 감축이 시작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지는 않다.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 및 미 2사단 등의 오산.평택 이전을 위한 부지 4백여만평 확보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곧바로 감축 논의를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미 2사단 오산.평택 이전이 가시화될 2005년께나 본격적으로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들고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주한미군이 감축될 경우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부대는 미 2사단이다. 미 2사단은 이미 1990년대 초반 감축 대상 부대로 집중 거론된 바 있는 데다 미국이 운영하는 10개 사단 중 한개 사단을 한국에만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펜타곤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의 외교안보 부서의 일부 당국자들은 해외주둔 미국 재배치가 주한미군의 감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25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라종일(羅鍾一)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의 통화 내용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외교부 관계자는 "라이스 보좌관이 밝힌 대로 해외주둔 미군의 재조정 작업은 이미 주한미군의 경우 미래 한.미동맹 회의에서 다뤄왔던 사안"이라며 "이번 재조정 작업은 주로 유럽을 겨냥한 것으로 주한미군의 감축으로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철희.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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