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도 핵폐기장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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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네바다주 산속에 영구적인 핵폐기물 저장소를 건설하려는 미 연방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 간에 '핵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전국 1백3개소의 핵발전소 등에서 나오는 핵 폐기물을 39개주 1백31개소에서 나눠 보관해 왔는데 라스베이거스 서북쪽 1백45km에 위치한 네바다주 유카산(山)에 터널을 뚫어 수명 1만년의 통합 핵폐기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지난 20년 동안 70억달러를 들여 과학적인 연구를 해왔다.

10년 가까이 끌어온 이 문제는 지난해 5월 의회가 주지사의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폐기장 설치 법안을 통과시키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에 서명함으로써 일단 계획으로 확정됐다. 부시의 공화당 측은 네바다 주민들의 공화당에 대한 지지도가 워낙 높은 데다 핵폐기장 건설이 대통령뿐 아니라 의회도 승인한 것이기 때문에 향후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불씨가 자라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1천여명의 네바다 주민들이 25일 부시가 방문한 라스베이거스에서 "부시가 '폐기장 백지화' 대선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을 내년 선거에서 이슈화하겠다"며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들은 부시가 2000년 대선 때 네바다주에서 "내가 당선될 경우 충분한 과학적 검증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은 사실상 백지화를 공약한 것인데 부시가 건설 법안에 서명한 것은 이를 위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네바다주는 핵과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곳에 핵실험장이 설치돼 수십차례의 원폭 실험이 이뤄졌다.

시위에서 민주당 소속 전 네다바 주지사 밥 밀러는 "우리는 4년 전 대통령 후보였던 부시가 약속했던 것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기억력이 나쁘지 않다"면서 "모든 네바다 주민은 자신이 받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얻은 것은 바로 핵폐기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웃 애리조나주에도 가서 이 문제를 알리겠다"고 말했다. 네바다주는 공화당의 아성이긴 하지만 갈수록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내년 대선에서 부시의 공약 위반을 주요 이슈로 부각할 가능성이 크다. 네바다주는 인구가 적어 이 주에 배당된 선거인단이 많지는 않지만 내년 대선도 지난 대선처럼 박빙으로 치러질 경우 어느 주든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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