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을 읽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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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만 해도 중학생에게 논술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큰 설득력이 없었다. 논술에 대한 인식이 광범위하지 않았고 실제적 필요성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고지 사용법을 알고 알맞은 개요를 짤 수 있는 정도의 기초 쓰기 소양을 갖추는 것 정도로 논술 대비를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글쓰는 방법을 안다고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원고지와 개요 작성법을 안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 학생에게 비난의 화살 돌리지 말아야

어려운 것을 많이 아는 사람이 논술을 잘 볼 수 있다는 식의 인식도 어느 정도는 오해다.

사실 이런 경향은 아직 잔재로 남아있다. 많은 사람이 중등논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선행학습을 시키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 마치 고교에 들어가기 전에 성문 종합영어와 정석 수학을 떼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식의 어려운 논술 교육은, 이를 학습하는 모든 중학생에게 전문 연구원이 될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은 대부분 실패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강요된 것이 애초 말도 안 된다는 의심을 할 겨를도 없이, 턱없이 어려운 교재 앞에서 좌절을 맛본다. 이러한 좌절은 심각한 문제다. 좌절하면 자신감뿐만 아니라 능동성마저 빼앗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자님 말씀 앞에서 그저 암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대학의 채점 관계자들은 매년 비슷한 답안이 대다수라고 불평한다, 하지만 과연 이런 처지의 학생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겠는가. 그들은 실로 엄청난 지식의 기념비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그것이 대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 채 노예처럼 공부하기를 강요받았을 뿐이다.

# 논술의 핵심은 사고력

마찬가지로 논술의 핵심은 사고력이며, 이는 나와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것들을 마치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인 양 암기해야만 하는가. 누구나 논술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 쓰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능동성은 죽이고 남의 생각을 복사해 암기하는데 급급 하는가.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좋은 책을 읽고 많이 써봐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왜 좋은 책의 독서목록은 학생들의 지적 수준과는 별개로, 심지어 선생조차 읽었을지 의심스런 것들로 짜여 있나.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왜 관심조차 없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는가. 우리가 전시 작전 통제권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이 어떤 수확이 있는가.

# 자신의 수준에 적합한 학습을 해야

어렵게 논술을 공부해야만 하는 것일까. 대답은'아니오'다. 중학교 시기는 신체적 성장이 가속화되고 정신적으로도 아주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 어떤 학습을 하는가는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수준에 적합한 학습 내용을 선택해 공부해 나간다면 지적 호기심의 성장은 눈부실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학습 내용을 선택할 경우 쉽게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러면 쉬운 논술 공부란 어떤 것일까. 중학생들이 가장 손쉽게 해볼 수 있는 사고력 연습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선택해 이를 채계화해 보는 것이다.

즉, 데스노트에 나오는 주인공들 간의 두뇌게임의 흐름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본다든지, 자신이 즐겨하는 게임에서 통용되는 법칙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 생각을 즐거움 깨달아야

그리고는 자기가 찾아낸 이런 것들이 또 어디에 적용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적용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적용할 수 있고,없는 것들을 구별짓고, 왜 이렇게 구분되는지 까지 생각을 해본다면 우리는 이미 논리적인 사고를 시작한 것이나 같다.

그리고 이런 연습을 혼자 하기보다 친구와 어울려 하는 것이 좋다. 재미도 도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참고해 볼 수 있다.

이런 연습에 익숙해 졌다면 다음엔 교과서를 갖고 연습을 해보자. 우리는 시험 준비를 위해 많은 것들을 암기한다. 하지만 대부분 암기한 지식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아깝지 않은가.

암기한 것 들 중 앞에서 이야기한 것에 적용시켜볼 만한 것이 없는지 생각해 보자. 의외로 사회 교과의 많은 부분이 이와 연결돼 있다는 점을 느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내신 교과 역시 스트레스의 한 원인만은 아닐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과학이나 수학에도 적용시켜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이들 역시 자연 현상의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기에 중요한 것은, 무엇을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생각의 즐거움을 깨닫는다면 논술이라는 것도 어렵고 먼 것은 아닐 것이다.

김광순 논술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 전문강사 (02-592-0589, www.u-can.co.kr)

사진=프리미엄 이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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