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11월] 장원 강순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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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1월 중앙 시조백일장 장원작을 낸 강순태(40.경남 마산시 자산동)씨는 어시장에서 10여년째 채소장사를 하고 있다. 매일 오후 4시30분이면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로 가 다음날 시장에 내놓을 채소를 떼어오는 게 강씨의 주요 일과다. 강씨의 작품들은 왕복 3~4시간씩 걸리는 대구와 마산 간 길 위에서 쓰여진다.

강씨는 "운전을 하고 가다 시상이 떠오르면 휴대전화에 문자 입력했다가 일과 후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에 옮겨 쓴다"고 소개했다. 조각 조각 모인 시어들은 조립되고 가공돼 한달에 한두편씩, 빡빡한 강씨의 일상에 위안을 주는 시조로 탄생한다.

운행 중 '딴 짓'을 하다 보니 위험한 상황을 맞은 때도 있다. 강씨는 "내 트럭이 차선을 벗어나고 있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여러번"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에는 갓길에 서 있던 경찰 순찰차량을 들이받을 뻔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강씨는 "문학과는 관련 없는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시조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엄격한 율격 안에 사상과 생각을 심는 시조의 특성이, 스스로 정한 생활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자신의 성향과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태학사에서 나오는 시조집들을 꾸준히 읽었고 정적이면서 내면을 추구하는 경향의 유재영 시인, 박기섭 시인의 작품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지난 5월 처음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 8월부터는 지역의 시조 동호인 모임인 달가람시조문학회에도 가입했다. 지금까지 습작한 작품은 모두 50편쯤 된다. 습작기간이 짧고 독학임을 고려하면 빠른 성과를 거둔 셈이다.

시장의 동료 상인 중 강씨가 시조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씨에게 전화했을 때 휴대전화 발신음(컬러링)으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만토바 공작의 아리아 '여자의 눈물'이라는, 채소 장수와는 조금 맞지 않는 음악이 흘러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린 이가 몇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현대시를 즐겨 읽고 시 습작도 하는 강씨의 아내가 가끔 강씨 작품에 대해 평해주는 유일한 독자였다.

강씨는 "월 장원에 뽑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전혀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얼떨떨하고 어깨가 무거워진다"고 한다. 강씨는 "자질도 모자란 것 같고 등단에 욕심도 없다. 장사하다보면 사람이 팍팍해지는데 서정성을 잃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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