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주자 잔치 때 쓰겠다-연변교포들이 가서 본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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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 들어 북한이 활발한 대외정책을 전개하고 남북대화재개도 적극제의 하는 등 과거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 뒤에는 날로 어려워져가고 있는 경제사정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각종 통계를 분석해보거나 제한적이기는 하나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의 체험담 등을 종합해보면 북한주민의 생활은 한마디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특히 방북자들이 직접 체험한 것 못지 않게 중국 등 국경지대에서 지켜본 북한의 모습 또한 심각하다.
연변의 주민들은 어느 국경지대 주민들보다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많다.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기도 하고 방북 때 비자를 받지 않고 통행증만으로 대신된다는 간편함 때문이다.
말하자면 북한을 이웃에 두고 늘상 지켜보는 셈이다.
.대부분 친·인척을 찾아 방북하기 때문에 주민사정에 정통할 수밖에 없는 연변의 교포들이 전하는 북한주민의 생활은 놀랄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최근 연변에서 이곳 교포들로부터 들은 북한주민생활의 어려움과 이지역을 둘러싼 북한의 대남 신경전을 정리해본다.
식량사정=연변에는 최근 「누룽지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북한을 방문할 경우 중국세관은 일정량이상의 곡물·식량반출을 규제하고 북한 역시 일정량이상의 반입을 규제한다.
따라서 사정이 궁한 친척이 북한에 있는 연변교포들은 항상 어떻게 하면 곡물이나 식량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한 아이디어가 누룽지 만들기다.
연변의 한 교포가 날마다 누룽지를 만들어 말려 축소시킨 뒤 북한의 친척을 방문할 때 가지고 갔다. 최근 연변지역은 대부분 전기밥솥을 쓰거나 가스를 사용해 밥을 만들 때 누룽지가 많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누룽지를 만들려면 재래식가마솥을 일부러 사용해야한다.
이처럼 축소시킨 누룽지를 가지고 세관을 통과할 때 규정위반이라는 지적을 받으면 『위병이 생겨서 누룽지를 물에 불러먹어야 한다』고 말해 통관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누룽지를 북의 친척에게 대량으로 가져다 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식량반출에 부심하고 있는 연변교포들 사이에서 「천재」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 다른 한 교포는 친척을 방문하면서 별사탕을 선물로 가져갔다.
사탕이 선물로 나오자 아이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였다.
그러자 이집의 어른인 할아버지가 나서 이를 빼앗아 『막내삼촌 잔치 때(결혼식) 쓴다』며 장롱에 넣어버렸다고 한다.
의복사정=겨울철에 북한을 방문하는 연변교포들은 비대해 보일 만큼 못을 껴입는다. 너무 껴입어서 거동이 어려울 정도다.
이는 추워서가 아니라 북한의 친척들에게 옷을 가져다주기 위한 편법이다.
세관을 통과할 때 의복 역시 곡물처럼 제한을 받아 몇벌 이상은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따로 들고 가는 선물도 있지만 입을 수 있는 한 입고 가서 벗어놓고 온다는 것이다.
대남 신경전=최근 연변교포의 한국방문이 늘어나고 한국에서도 이 지역을 대거 방문하면서 연변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과거와 달리 한국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방문객의 「돈 씀씀이」 때문. 예를 들어 30대의 이 지역 교포가 백두산관광 가이드를 2박3일정도 했을 경우 보통 안내비 일당 20달러외에 봉사료 명목으로 1백달러를 받는다.
이 돈은 중국돈 5백20원으로 30대의 평균월급 수준인 2백∼2백50원 (40∼50달러수준)의 2배 이상에 달하는 액수다.
아쉬운 소리만 하는 북한친척보다 한국인이 인기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북한당국은 돌아선 연변교포의 마음을 되돌려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있다.
중국돈 7백원(약1백40달러)만 내면 북한명소관광을 시켜주고 좋은 대접을 해준 뒤 컬러TV까지 준다고 한다.
북한의 이같은 정책이 일부교포들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다. 한국에 와서 한약판매로 고생하고 친·인척들에게서 박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서울 가서 거지대접을 받는 것보다 평양 가서 대접을 받는게 더 낫다』며 북한으로 기우는 분위기가 부분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또 다른 예는 방한교포의 방북규제.
한국을 방문했던 교포가 북한을 관광이 아닌 친·인척방문으로 들어 오려할 경우 제재한다.
대부분은 사전정보에 따라 국경선의 세관에서 돌려 보내지지만 이같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질 경우 방문도중이나 출국시 연행해 「조사」 명목으로 20일까지 구류시킨다고 한다.
일부 한국방문자들이 연변의 친·인척을 통해 북에 있는 친·인척에게 편지를 보낼 경우이것이 발각되면 편지를 받은 북한주민은 소문도 없이 강제이주 된다고 한다. <북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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