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자재 보내기운동/김창식 과교총부회장(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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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학교 실험실 한심해요”/대학신입생 41% 온도계 눈금 못읽어/이번 사업 과학교육 정상화에 기폭제
형편없이 빈약한 초·중·고교의 과학실험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과학기자재 보내기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연일 후원회원들의 성금이 답지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가시적인 성과만 강조해왔지 이의 기초가 되는 초·중·고교에서의 과학교육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따라서 지원도 극히 미미한 실정이었다.
또 일선 학교당국이나 학부모들이 과학과목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도 과학교육 부재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과학교육,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것인지,우리의 실상과 문제점은 무엇이고 개선책은 없을까. 중앙일보와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KBS등이 주최하고 있는 과학기자재 보내기운동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김창식 한국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 상임부회장(56·국민대 사범대학장·과학교육학)으로부터 과학교육의 실상과 해결책을 들어본다.
­과학교육의 목표는 어디에 있으며 실험실습교육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과학교육의 목표는 첫째 탐구사고력의 배양,둘째 과학기술인력의 양성,셋째 국민의 과학화에 있습니다.
과학은 다른 학문과는 달리 실험을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학문입니다. 실험교육이 곧 과학교육의 성패를 좌우하지요. 실험교육이란 관찰하고 측정하고 실험하는 활동입니다.
이런 것들을 하려면 특별한 시설과 충분한 실험기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초·중·고교에는 이런 기본적인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과학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매우 가슴아픕니다.
­과학교육의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시지요.
▲우선 실험실의 경우 교육부의 자료에 따르면 실험실 확보율이 국민학교는 78%,중학교 69%,고교 55%로 되어있습니다.
실험실은 충분한 넓이에 별도의 상하수도,전기시설이 제위치에 필요한 만큼 있어야 하며 환기·채광·조명·안전시설을 갖춰야 합니다. 일선교사들은 이런 시설들을 어느 정도 갖춘 학교는 30%도 안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실험기자재는 더욱 한심합니다. 역시 교육부 통계로는 국민학교가 필요한 기자재의 76%를 확보하고 중학교는 75%,고교는 61%를 확보해 평균 72% 정도는 갖추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으나 실제로는 필요한 것의 20%도 안된다고 주장하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64년에 처음 만들어진 학교교구·설비기준이 있습니다만 이는 각급 학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종류와 수량만을 정한 것으로 여건이 달라진 현시점에서 볼때 이 기준을 가지고는 턱도 없습니다.
여기다 숫자만 채웠지 낡아 못쓰거나 고장난 기자재,부서진 것까지 합치면 일선 교사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요.
또 열가지 실험기구중 한가지만 없어도 실험을 하기 힘들거나 엉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확보율 70%와 실제로 실험가능한 학교가 70%라는 말은 서로 의미가 다르지요.
­그러면 우리 중·고생들의 실험실력은 형편없겠군요.
▲여러가지 사정으로 실험교육이 제대로 안되니 실력이 좋을리가 없지요. 예를 들어 S대 자연계 신입생에게 온도계 눈금을 읽게 했더니 41%가 전혀 못읽고 23%는 우물쭈물했다고 합니다.
또 제가 현장에 나가 고교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액체를 다루는 유리기구인 피펫과 뷰렛의 이름과 사용법을 모르는 학생이 대부분이었으며 현미경을 사용해 빛을 조절한다든가 찾고자하는 시료의 위치를 제대로 찾는 학생이 드물었습니다. 실험을 아예 해보지 않았거나 형식적이었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실험기구를 취급하는 기능이 이 정도니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탐구사고력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국제과학교육평가에서 우리나라 학생은 국민학교에서 우수하다가 상급학교로 갈수록 떨어진다는 얘기는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외국의 사정은 어떻던가요.
▲미국이나 유럽·일본등 선진국에서는 실험실 시설이나 기자재부족에 대해 언급할 일이 없을 정도로 완벽합니다.
영국의 경우 기본적인 시설과 장비는 물론 실험 하나하나마다 필요한 기재들이 세트로 되어있어 선생님은 이것만 들고 들어가면 다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일본도 우리처럼 설비기준이 있습니다만 우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충분하며 확보율 1백%도 모자라 1백50∼2백%를 확보하려는 학교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과학교육에는 그밖에도 문제점이 많을텐데요.
▲물론이지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우선 실습재료비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국민학교의 경우 학생 1명당 1년에 고작 4백원이 보조됩니다. 중학교는 2천원,고교는 2천4백원입니다. 서울에서는 실험용 개구리 한마리에 5백원이라고 하는데 이것가지고 무슨 실험을 하겠으며 몇번이나 하겠습니까.
50여명의 학생이 한방에서 실험을 해야하는 것도 문제지요. 기구는 적고 사람은 많고 시간은 짧으니 한조 6∼8명 가운데 한두사람만 실험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그냥 노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대학입시도 문제지요. 과학과목의 배점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학교와 학생·부모 모두 과학을 소홀하게 취급하게 됩니다. 이제는 실험을 안하면 풀지 못하는 문제가 출제돼야 합니다.
이밖에도 조잡한 과학기자재,과학교사에 대한 푸대접,과학교사의 실험에 대한 열의 부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육자치제가 되면 더 여건이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학기자재 보내기운동은 정부가 할 일을 민간이 떠맡은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는 보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당연히 국가가 책임지고 해줘야지요. 그러나 교육부 예산의 90%가 선생님들 봉급으로 나가고 나머지를 쪼개 쓰려다보니 현실적으로는 기대하기 힘든 형편입니다.
최소한 연간 1천억원은 필요한데 지난해 초·중·고 과학교육예산은 1백15억원이었습니다. 대학을 포함한 전체 과학기술교육예산의 6.6%에 불과합니다. 올해는 6.0%로 떨어질 것 같습니다. 이돈 가지고는 어림도 없지요. 정부만 믿고 기다리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그래서 국민들도 자녀들의 과학실험환경개선에 조금이나마 동참해보자는 것이지요.
물론 이 운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이 운동이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조그마한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중앙일보 등이 이번에 매우 좋은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학부모들도 자녀들에게는 컴퓨터를 경쟁적으로 사주면서 다니는 학교의 실험환경에는 무관심해온게 사실입니다. 실상을 바로 알리자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국민들의 성금은 어떻게 쓰여질 것입니까.
▲교육부가 좋은 계획을 갖고 있으리라 봅니다. 과교총은 과학실험기구세트를 개발해 공급했으면 하는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한 단원을 완벽하게 학습할 수 있는 실험기구를 학년마다 개발해 특수지 국민학교와 벽지 중학교부터 공급하자는 것이지요.<신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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