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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살찐 자의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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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 사회가 선진화.문명화되면서 몸 관리는 의무화되고 있다. 다이어트는 신흥 종교가 됐다. 신년 대부분 여성의 꿈은 살을 빼는 것. 나이와 상관없다. 잉여의 살덩어리는 혐오의 대상이다. 여름이 오기 전에 살을 뺀다고? 오, 맙소사. 디자이너들은 겨울철마저 여성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유행하는 스키니 청바지와 레깅스라니. S라인을 만들기 위해 너나없이 맹렬히 몸 만들기 중이다.

근대 이전 몸은 신분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징이었다. 노예나 천민들은 몸에 인장을 새겨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문화혁명과 크메르루주 때는 손바닥으로 지주와 농민을 갈랐다. 이제 몸은 새로운 신분 정체성을 나타낸다. 뉴욕의 상류층은 늘씬하고 마른 몸으로 레깅스를 입고 조깅을 한다. 흑인과 히스패닉은 튀긴 감자와 햄버거를 먹으며 더욱 비만해진다. 부자들은 헬스장을 다니고 지방 흡입술을 받는다. 최근 미국 기업은 대머리와 뱃살이 심하게 나온 사원을 승진에서 탈락시켰다. 자기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리하여 현대인은 몸을 관리해 신분과 계급과 자기 능력을 드러내려 한다. 비만클리닉.피부클리닉.성장클리닉 등이 성업 중이다. 육체는 거대한 의료.과학 시스템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조정된다. 체중계의 숫자를 보면서 칼로리 계산을 한다. 현대인은 모두 똑같이 표준화된 육체를 향해 나아간다.

비만에서 탈출하느냐는 인간 의지력과 성공 신화의 중요한 문제가 된다. 텔레비전 오락프로 '소문난 저녁' '쾌남시대'에서는 남성 다이어트 도전기를 보여 준다. 다이어트 불패 신화는 계속된다. 다이어트 이전과 이후를 보여 주면서. 효용가치가 없는 잉여의 살집을 명예 퇴출시키자! 몸 만들기는 자본주의 관리 시스템을 정교하게 닮아가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이니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자'. 이런 구호는 이제 낡아빠진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미녀는 괴로워'가 아니라 '미녀는 편리해'다. 앞차를 들이받아도 택시기사와 교통경찰은 친절하기만 하다. 카 세일즈맨과 자장면 배달부는 그녀를 보고 마냥 웃고만 있다. 미녀는 행복하기만 하다. 그래서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개봉한 지 한 달 만에 5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몸이 있는 것인가. 우월한 몸과 열등한 몸. 거대한 유리창 벽을 거울인 양 바라보며 러닝머신의 속도에 적응하면서 내가 바라보고 있는 몸은 나의 몸인가. 1980년대 운동권은 '또 다른 운동권'이 되었다. '미녀는 괴로워'에서 다이어트와 성형에 성공한 한나는 울먹이며 말한다. "내가 진짜 누구인지 모르겠어…." 바비 인형을 쓰다듬는 서구화된 육체 추구가 국가 간의 불평등까지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을 지나친 예방의학으로 강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거대 자본문명은 기름진 것을 먹인 뒤 이를 다시 사회악으로 규정해 배설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의학.자본시스템.스크린에 잠식당한 몸을 구해내고 싶다. 해 뜰 때 일어나고 해질 때 잠자기. 열심히 땀 흘려 일해 공복을 느끼기. 자연에 경배하듯 아끼며 먹기. 부지런히 걸으며 생각하기. 가끔 하늘 쳐다보며 바람결을 손끝으로 느껴 보기. 몸 스스로의 감각을 회복하고 다시 일깨워야 하지 않을까. 다시 몸을 생각해 본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